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식습관 공자의 생활습관을 설명한 논어 향당편을 보면 미식가로 나온다. 고운 쌀로 만든 밥과 가늘게 썬 회를 즐겼고 색깔이 나쁘거나 나쁜 냄새가 나거나 제철 음식이 아니거나 알맞게 익히지 않거나 올바르게 자르지 않으면 음식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에 어울리는 장(醬)이 없어도 음식을 먹지 않았고 고기가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술이나 육포는 집에서 만들지 않고 시장에서 사온 것은 먹지 않았고 생강을 꾸준히 먹었으며 술을 마셔도 취해서 흐트러질 정도로 마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불우한 인생 아버지가 육십 노인에, 어머니는 십대 중후반의 꽃처녀였다. 태어난지 3년도 안 되어 아버지가 사망했고, 공자는 부친묘의 위치마저 장성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생아였다. 무녀의 자식이다보니 평범한 사람과 다른 세상을 접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공자 나이 십대 중후반에 사망했다. 신분이 천해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공자가 경험한 일들은 정말로 다양한데, 장례식을 돕는 일, 종묘의 제사를 돕는 일, 창고를 관리하는 일, 수레를 모는 일 등등 온갖 허드렛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학문을 가까이하여 마지막으로 사학을 설립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나이 들어 학문이 어느 정도 자리잡자 십 수년을 주유 열국하며 자신을 등용해줄 사람과 인을 구현할 나라를 찾아 떠돌아 다녔으나 온갖 조롱, 비판, 죽을 위기 등등을 거치면서 절망을 반복했고 끝내는 이름 뿐인 국부 하나 얻어 죽기 3, 4년 전에 노나라에 돌아왔다. 정치적 야망은 전부 무너졌다. 그래도 학식이 대단하고 인품이 지극히 높아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거느릴 수는 있었지만, 노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제목의 apologia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에 관해 학자마다 이견이 있다. 플라톤 번역으로 유명한 박종현 교수를 비롯한 이들은 법정 변론문인 이 글을 소크라테스의 '변론'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암학당 번역의 경우, 소크라테스를 부정적으로 보던 당시 아테네 대중들의 눈에는 소크라테스의 항변이 그저 변명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점과 그런 대중들을 향해 플라톤이 자기 스승을 이 글을 통해 변명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변명이라는 번역을 고집했다. 소위 소크라테스 3부작이라고 부르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 파이돈 중 가장 처음을 장식하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루는 이 세 작품이 국가, 향연 등과 함께 플라톤 저작 중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다. 특히 변명의 경우 학자들 사이에서도 플라톤 사유의 시작점으로 많이 지목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다른 제자들 - 자유, 자하, 자장, 민자건(민손), 염백우, 진항(진자금), 중궁, 염유 등이다. 이 중에서 제일 언급이 많이 되는 제자는 안회, 자로, 자공이며, 이 3명은 공자 제자의 삼대장이라고 할만하다. 안회는 어질고 똑똑하며 지혜롭고, 자로는 힘이 쎄고 장군감이어서 용감하며, 자공은 상인 출신이라 돈이 많아서 공자가 힘들 때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주었으며 인맥이 넓었다. 담대멸명, 복부제, 원헌, 공야장, 남궁괄, 공석애, 안무요, 상구, 고시, 칠조개, 공백료, 사마경, 번수, 유약, 공서적, 무마시 - 여기까지 논어에 기록이 있는 제자들이다. ---------------------------------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무지의 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자신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고 신탁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식을 가진 자들을 찾아다닌다. 그는 지식을 가진 자들을 찾아가 그의 특유의 논법으로 그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로 인해 여러 사람들의 공분을 샀으며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서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2. 소피스트 당시엔 변호사가 없었기 때문에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했다. 이를 위한 웅변술을 수업료를 받으며 가르치는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 였다. 허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쳤기에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말도 더 잘한다)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을 배우러 많이 찾아왔다. 이것 또한 훗날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원흉이 되었고. 신을 믿지 않고, 사람들에게 안좋은 지식을 설파한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게 된다. 3.3. 재판진행 소크라테스의 1차 변론이 끝나고 1차 투표로 유죄 혹은 무죄인지 판결을 받았는데 280 : 220 의 표차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 후 2차 변론이 진행되었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잘못은 없지만 기꺼히 벌금을 내겠다는 식으로 말하자 이에 분노한 배심원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자공 - 논어에서는 머리가 비상하고 언변에 뛰어나며 장사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먼치킨으로 나온다. 굉장한 부자였는데,이 재산으로 공자학단을 경제적으로 후원해 줬다. 공자가 세상을 떠났을때 무려 6년상을 치렀을 만큼 공자에 대한 존경심이 엄청났다. 증자 - 공자에게서 우직하지만 아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나이 차이가 거의 50살이나 나서 공자 사망 당시 20대였기에 공자와 대화하는 내용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오히려 증자의 아버지인 증점이 더 많이 등장한다. 다만 논어가 증자계파에서 완성되었다는 설이 주류적일 정도로 논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 있는 편이다. 재여(=재아) - 공문십철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위치이긴 하지만 정작 논어를 보면 비난의 대상으로만 등장한다. 자로는 꾸짖으며 행동을 고치길 원하는 모습이라면 재아는 순전 비난일색이다. 공자에게도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것은 덤. 삼년상을 비효율적이라며 일년상을 주장하면서 공자에게 '재아는 부모에게 3년도 사랑받지 못했구나'라는 뒷담화를 듣거나 재아가 낮잠을 자는 것을 공자가 보고 재아를 '조각할 수 없는 썩은 나무'로 평가한다. 허나 현대에 와서는 재아가 비판받은 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사형 판결 후 마지막 연설 표결 결과 360 대 140으로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확정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아테네를 비난하려는 이들에게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를 사형시켰다고 헐뜯을 구실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혹자는 그의 항변이 부족해 사형당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항변이 아니라 몰염치가 부족했을 뿐, 앞서 말한대로 동정심에 호소하며 목숨을 구걸하진 않겠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비겁하게 목숨을 구하려는 행위가 정의롭지 못하듯, 재판에서 비겁하게 의견을 굽혀 살려 드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이고 죽음에게 사로잡히는 것 보단 악에 사로잡히는 것이 더욱 빨리 다가오는 나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은 늙어서 느린 것(죽음)에 붙잡혔지만 젊고 방자한 멜레토스는 더욱 나쁜 악에 사로잡혀 파멸할 것이라 평한다. 마지막으로 죽을 때가 다가오니 예언을 하나 하겠다고 하며 시민들이 그가 귀찮게 구는게 싫어서 자신을 사형시키지만 자기가 떠난 이후에는 젊은이들이 더욱 혹독하게 캐물으며 그들을 응징할 것이라 한다. 한편 자신에게 무죄판결을 던져준 이들에게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재판관들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렇게 된거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제자 목록 안회 - 논어에서는 공자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수제자로 나온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로 일찍이 공자가 '나는 그가 진보하는 것만 보았지 정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공자보다 일찍 죽는다. 안회의 죽음을 들은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天喪予, 天喪予!)라고 탄식하며 슬퍼했다. 자로 - 논어에서는 무골(武骨)에다가 성격도 드센 전형적인 호걸형 인물로 나온다. 또한 대부의 가신을 지낼 만큼 정치적 능력도 상당했다. 공자에게 면박을 많이 받지만 칭찬도 받고 공자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후에 위(衛)나라 공실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젓갈로 담겨진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한 공자의 행동이 자기 집의 젓갈을 모두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 것이 공자식인설이라는 루머로 퍼졌다. 안회와 더불어 공자에게 가장 중요한 제자였는데 자로가 죽은 소식을 듣고 안회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외쳤으며 자로가 죽은 다음해에 공자도 사망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둘째 항변 : 형량 판결 배심원 표결 결과 280:220으로 유죄 판결이 났다. 고발자 측은 사형을 구형했다. 소크라테스는 무죄표가 자기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자기 형량을 구형하는 연설을 시작한다.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냐고 군중들한테 반문하며, 자신은 사람들과 사회를 돌보고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올림피아 우승자처럼 영빈관에서 향응을 받아야 하지 않냐고 한다. 그저 사람들을 행복하도록 보이게 만들어 줬을 뿐이고 부양도 필요없는 올림피아 우승자보다 자기가 그 영예에 어울리지 않느냐면서. 자기가 뻔뻔하고 예의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항변 시간이 부족해[22] 자신의 옳음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해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는 불의를 행하고 있지 않으니 나쁜 것임이 확실한 추방형, 벌금형, 징역형을 요구하기보단 차라리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직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고 한다. 그러면서 벌금형은 자신이 가난해서 낼 돈이 없고, 징역형은 감옥을 관리하는 이들의 종살이를 해야하니 확실히 나쁘고, 추방형은 자신이 목숨을 구걸하는 비굴한 이가 될 뿐더러 아테네 시민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제자들 3,000명에 육박하는 제자들을 육성하여, 이후 전국시대의 인재풀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수받은 72명의 제자가 있고, 다시 그 중에서도 뛰어난 10명의 제자를 공문십철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사람들이 대륙 곳곳으로 진출해서 상당수의 제자백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자도 공자의 학문을 좀 더 보편주의화시킨 인물이고, 보통 법가로 알려져 있는 상앙은 공자의 제자 자하가 위나라에 세운 학교에서 배출된 인물이고, 한비자나 이사 등은 순자의 제자였다. 자공, 자로 등의 주요 인물만 대단한 게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이 이후 전국시대에 활약한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게 된 것이다. 공자가 유랑생활 할 때도 공자의 제자들은 수시로 다른 나라로 가서 일을 하기도 하고, 그들의 소개로 공자가 초청되기도 했다. 특히 공자가 10여년 동안 유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벌이었던 자공의 경제적 지원이 컸다. 공자가 마냥 가난했다고만 생각하는 건 착각. 군주나 고위관료들과 교류하려면 최소한의 경제적 수준은 있어야 된다. 노나라에 돌아왔을 때도 공자는 집에 마굿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