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기자 | SBS 예능 프로그램 '정글밥'이 4회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성공리에 바누아투 여정을 마친 가운데, 새 멤버와 새로운 정글행을 예고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는 10일(화) 방송되는 '정글밥'은 동남아시아 북동부에 위치한 팔라완 제도로 떠난다. 1700여 개에 달하는 섬만큼이나 다채로운 식문화와 풍부한 해양자원이 있는 환상의 섬. 그중에서도 팔라완 제도의 최초 부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한식을 전파한다. 류수영은 이번 장소에 대해서 '팔라완 제도는 한국처럼 쌀밥 문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국의 밥도둑인 반찬 문화를 많이 알리고 오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글밥'을 함께하는 밥친구 멤버에도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바누아투 편을 함께 했던 'K-집밥 마스터' 류수영을 필두로 '자연인' 이승윤, '인천 인어' 유이 그리고 새로운 멤버 배우 김경남이 막내로 합류한다. '정글밥' 선배들의 귀여운 텃세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김경남은 촬영이 진행될수록 발군의 예능감을 발휘하며 빠르게 '정글밥'에 녹아들었다고. 특히 '정글밥'을 통해 첫 고정 예능에 도전한 김경남은 정글을 위해 다이빙, 마늘 까기 연습 등 맹활약을 예고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베스트셀러신간보통장군 전인범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의 이야기(5)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 부하에게 사랑받고 동맹국 군인에게 존경받은 장군의 이야기 육사에 턱걸이로 입학한 청년이 있었다. 키가 작고 운동신경도 그리 좋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군인의 꿈을 꾸던 그 청년은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이 터진 아수라장 속에서 상관을 구해 냈고, 동부전선 최전방의 고지에서 부대원을 이끌었다. 전장과 안전지대의 구분이 없던 이라크에서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지원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에게 납치된 한국인 인질들의 구출에 최선을 다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박기주 기자 | -신(神)이 빚어놓은 보석같은 얼음왕국 알래스카 그리고 수어드 로드- 국가의 흥망성쇠는 시대적 환경과 체제의 선택과 지도자의 국가경영 철학에 의해 좌우된다.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의 원조격인 페론주의를 도입하여 끝모를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있는가 하면 반미주의와 산업의 국유화와 노동가치설에 매몰된 베네수엘라가 남미의 외눈박이 불량국가로 전락한 참담한 현실을 세계가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는 이와는 다른 경우에 해당되나 결과는 같은 길을 걷게된다. 한 개인의 정치적 욕망이 성공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어떻게 몰락의 길로 몰아가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전형(典型)이 된다. 1981년에 집권한 사회당 당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후보의 선거 벽보는 이러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 드립니다."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4선이라는 장기집권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 대공황 탈출과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국가전략 목표달성을 위해 635회의 거부권을 행사한 철혈정책 집행관 마침내 미국을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 놓게되는 대통령이 바로 프랭클린D.루스벨트이다. 미국과 루스벨트의 이와같은 성공 저변에는 또 한 명의 탁월한 정치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성숙한 일본관...지일과 용일`극일(知日과 用日·克日) 청암이 남다른 세 번째 측면은 성숙한 대일(對日) 자세이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 전 국회의원 박태준 출생 음력 1927. 9. 29. 사망 2011. 12. 13. 학력 육군사관학교 6기 학사 수상 2008년 대한축구협회 창립75주년 공로상 2007년 자랑스런 육사인상 1999년 욱일대수장 경력 2012.06 철강 명예의 전당 헌액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장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965년 한일(韓日)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 일부로 세운 ‘국민 기업’이라는 칭호도 퇴색했을 게 분명하다, 장교 시절 당번병을 쓰지 않았던 청암은 통행금지를 지키다가 첫 아이를 잃었다. 그는 멸사봉공(滅私奉公)과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으로만 외치지 않고 국제 가격보다 20~40% 저렴하게 양질의 철강 제품을 국내기업들에 공급하면서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제철보국(製鐵報國) 경영’에 목숨 걸었다. 그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는 “우리가 실패하면 조상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우향우(右向右)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하자”고 외쳤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그때마다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갔다. 1979년 박정희 서거후 청암은 “포항제철을 정치 외풍에서 지키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정계의 수장(首長·최고위원)이 된 그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의 불화로 1992년 말 민자당 최고위원·포항제철 회장·국회의원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다른 추도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너나 없이 돈에 홀려 정신 잃은 세상에서 박태준의 길을 따라가기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천하는 개인 것이 아니다”...‘멸사봉공’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公]의것). 이 한 마디는 청암의 생애를 관통하는 또다른 정신적 기둥이다. 1970년 포항제철에 사상 처음 6000만원의 보험회사 리베이트 자금이 생겼을 때이다. 청암이 이 돈을 청와대로 들고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포항제철의 예산에서 빼낸 것이 아니고 공돈이니 통치 자금에 보태 쓰시라”고 건네자, 박 대통령은 “임자 마음대로 써라”며 돌려주었다. 청암은 그러나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거기에다 회삿돈을 더 보태 임직원 자녀들을 위한 제철장학회를 세웠다. 이렇게 세운 학교만 포항과 광양에 모두 27개이다. 한국 기업 최초로 임직원 자녀 대상 전액 대학 장학금 제도와 한국 최초의 연구 중심대학(포항공대)은 이렇게 탄생했다. 국영기업 최고경영자(CEO)로 30여년 재임하는 동안, 청암에게는 고가(高價)의 설비 구매나 원료 도입 결정을 둘러싼 정치 자금 협조와 인사 청탁, 리베이트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불법 뇌물인 정치 자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정치 무풍지대’를 고수했다. 이는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베스트셀러신간보통장군 전인범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의 이야기(9) 목차 1.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 1958년 ● 조부모님 ● 부모님 이야기 ● 탄생 그리고 고향 장충동 ● 부모님의 이혼과 뉴욕 생활 ● 귀국과 학창 시절 ● 고등학생 전인범 2. 사관학교와 위관 장교 시절 ● 사관학교 생활 ● 소위 임관과 신참 소대장 ● 이기백 장군, 그리고 미군과의 인연 ● 아웅 산 테러 ● 영웅이 되다 ● 보병중대장으로 부임하여 ●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다 ● 사단 작전장교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주식·퇴직금 ‘0원’... 73세에 전셋살이 “청암의 도덕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분의 리더십 근간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었다”(황경로·포스코 2대 회장)는 증언 그대로이다. 인사 청탁과 금품 주고받기가 난무하던 1956년 11월, 그는 세칭 ‘노른자위’ 자리인 국방부 인사과장이 됐다. 그러나 청암은 유혹 및 압력과 싸우다가 10여개월만에 25사단 참모장 근무를 자원해 갔다.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되겠냐”고 하자, 청암은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다.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준 하사금을 합쳐 서울 북아현동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8년 새 15번 전셋집을 전전했다. 38년간 살던 집을 2000년에 팔아 생긴 돈 14억 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73세에 다시 전세살이를 했다. 그가 사후에 남긴 재산은 전무(全無)했고, 말년에 생활비와 병원비는 자녀 5명(4녀 1남)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청암을 다룬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한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 였던 포항제철 25년 동안 박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용광로 같은 애국심과 도덕성. 이는 청암이 자신의 좌우명(座右銘), 즉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히 조국에’에 철저해 탁월한 업무 능력과 강력한 도덕성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평가이다. 그는 실제로 1964년 12월 국영기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맡은지 1년 만에 만년적자(萬年赤字)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보통 4~5년 걸리는 종합제철소 건설 작업을 제철소 구경조차 한적 없는 38명과 함께 착공 3년 3개월만에 완공하여 마쳤다. 조업 첫 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를 냈다 가동후 50년 가까이 적자였던 일본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기적’적인 일이다.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사에서 제철소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다. 청암은 제철소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하루 24시간 작업을 지시해 놓고 자신도 매일 3~4시간 잠 자며 현장을 챙겼다. 1968년 포항제철 출범부터 1992년 광양제철소 2기 완공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포항 효자동 사택과 회사에서 지내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불렸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다. 피와 땀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부(富)의 중심 34세이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이후 50년 동안 요직(要職)을 맡았다. 육군 소장 예편→대한중석 사장(3년)→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25년)·명예회장→민정당 대표·민자당 최고위원·자민련 총재·4선(選) 국회의원→국무총리….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인생’의 전형이다. 흔히 부패 인사, 독재자 같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씨는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이다.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2011년 12월 17일서울 현충원 영결식장 ). 한 사람의 일생이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로까지 칭송받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다. 박태준 회장(이하 청암으로 호칭)에게 어떤 남다른 측면이 있는 걸까? 통상대신(通商 大臣) 시절 포항제철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종업원들이 너 나 없이 마음으로부터 박태준을 따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