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후일담 이에 이어서 사실 자신은 제자를 둔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자기는 무언가를 가르친 적이 없고 그저 대화를 원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대화를 나누며 진리를 탐구해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젊은이들이 찾아와 제자를 자청한 이유는 그저 앎을 추구하는 것이 즐겁고 의미있는 일이라 그런 것이고 만일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진짜로 해를 끼쳤으면 그들 본인들이 멜레토스 편에 증인으로 서 고발에 앞장섰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 젊은이들 본인은 물론 그들의 나이든 친척들도 그를 돕고 있는 것을 한번 보라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중에 동정을 사려 노력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뻔뻔하고 건방지다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며 그에 대한 항변도 시작한다. 우선 이는 부끄럽고 명예롭지 못한 일이고, 법과 진실을 가려야 되는 자리에서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신들 앞에 떳떳하지 못하니 불경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을 믿는다는 것을 강조해 불경죄를 반박하면서 아무쪼록 현명한 판결 부탁드린다고 하며 변론을 마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사실 공자의 진짜 업적이라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을 민간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공자 이전에는 제대로 된 교육 기관이라 할 것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기관도 귀족 한정이었다. 이렇게 귀족들이 지배계층에 필수적인 기술과 매너를 폐쇄적으로 가내에서 전승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나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예물로 육포 한 다발만 가져온다면 다 가르쳐주었고, 이 이야기는 지금에 이르러선 속수지례(束脩之禮)라는 성어로 굳어졌다. 여기서 육포를 언급한 이유는, 당시 육포는 남에게 주는 예물로는 가장 격이 낮은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스팸이나 참치캔 정도 지위였다. 즉 배우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르치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가 "백성들이 많으면 넉넉하게 해주어야 하고, 넉넉하게 되면 가르쳐주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공자에게 교육이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꼭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소크라테스는 이번엔 사람들을 일깨우려 하면서도 정치에 나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다이몬의 목소리가 들려와 정치참여를 막았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자기 신념과 정의를 지키려 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하고 그만큼 사람들을 일깨우지 못할게 뻔했으니 다이몬이 맞았다고 주장하며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드물게 정치에 관여했던 두 사례를 이를 뒷받침하는 예시로 든다. 첫번째 사례는 민주정 하에서 평의회 의장을 맡으며 아르기누사이 해전 전후처리와 관련된 장군 10명의 재판에서 홀로 반대 의견을 던졌던 것이다. 두번째 사례는 민주정이 잠시 망하고 30인 과두정이 들어선 시기의 것으로 과두정 참주들이 살라미스 사람 레온이라는 이를 잡아오라 명령했을 때 이를 거부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일이다. 자기는 어떤 상황에서나 정의를 추구해왔고 심지어 제자라 자청하는 이들이 부정의한 행동을 할 때에도 반항해왔다고 자부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육예(六藝)라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예는 그냥 예의범절이 아니라 각종 공식행사의 의례 절차를 배우는 것. 이걸 배우면 당장 외교나 제사 등의 국가행사를 주관할 능력이 생긴다. 악은 음악인데, 이것도 그냥 요즘 실용음악 같은 것 뿐만 아니라 행사 때 연주할 음악을 배우는 것이라서 역시 관료로서의 실질적 교육이 된다. 또한 유교 텍스트에서는 문화 자체를 예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 사와 어는 활쏘기와 수레타기. 즉, 전쟁기술이다. 전차가 퇴화된 후에는 말타기로 바뀌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호신술로서 검술도 비중있게 가르쳤다. 서와 수는 문서 만들기와 회계처리라고 보면 된다. 단순 글짓기와 산수가 아니라, 공무원으로 일할 때 문서를 작성하고 세금이나 국가재정을 계산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그리고는 만일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설득이 먹혀서 사면 판결이 나더라도 대신 지혜를 탐구하며 사람들을 붙잡고 캐묻는 것을 금지당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자기 행동은 델포이 신탁을 통해 내려온 신의 명령이니 아테네 판결의 명령보다 우위에 있으니 만일 진짜 이런 판결이 나더라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테네 시민들에게도 유익한 일이니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대화를 걸며 절대 놔주지 않고 캐물어서 만일 상대방이 사실은 무지하다면 무지함을 깨닫게 해줄테니 만일 이런 판결을 내리고 싶다면 이를 고려하고 현명하게 판단하라 촉구한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소란을 피우지 말아달라 다시 한 번 당부하며 자신을 고발한 멜레토스와 아뉘토스는 자기에게 절대 해를 끼칠 수 없다고 자부한다. 형편없는 이가 훌륭한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가로 혹자는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하는 것이 형편없고 나쁘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사람을 부정의하게 죽이려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나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잠든 말의 엉덩이에 들러붙은 등에에 비유하며 자기가 아테네 시민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있고 이를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교육 방식 공자의 기본 교육은 원래 노래(詩)였다. 시(詩)라는 표현 때문에 그냥 조용히 독서만 할 것 같지만, 실제로 리듬을 타면서 노래까지 불렀다. 흔히 유교라고 하면 도식적으로 틀에 박힌 이야기를 듣기 쉽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공자 본인은 그렇게 틀에 박힌 스타일로 교육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시경은 가사만 전해져서 멜로디를 알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예상 반론에 대한 항변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와의 논답을 끝마치고 다시 변론 연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는 사람들 중에 왜 죽을 지경이 되어서도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하냐고 묻는 이가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반박을 시작한다. 만일 훌륭함과 정의보다 생사의 문제를 먼저 두면 아킬레우스 같이 비겁하게 살기보다 용감하게 죽기를 택한 이들은 뭐가 되냐며, 자신은 죽는 것 보다 부끄러움을 더 두려워하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죽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불의를 저지르는 것과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이에게 대항하는 것은 확실히 나쁜 것인줄 알지 않느냐면서 만일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확신하며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자기 무지를 인정 못하고 지혜로운 척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거라 한다. 죽음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의 호칭 이름은 구(丘).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 머리 꼭대기 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구(丘)라 했다고 한다. 자는 중니(仲尼). 원 성종 11년(대덕大德 11년, 1307년)에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사당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이기도 하다. .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이어서, 국가가 믿는 신들을 부정한다는 것을 걸고 넘어지며 멜레토스에게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 생각하는지, 아니면 기존 신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을 새우려 했다고 여기는지 묻는다. 멜레토스는 물론 신을 믿지 않는 쪽이고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 돌덩이와 흙덩이라고 주장하며 젊은이를 타락시켰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다이몬이란 신령을 따를 수 있냐면서 이를 반박한다. 다이몬 역시 신적인 존재이니 신의 일종이거나 신의 자식일텐데 신을 부정하면서 다이몬을 긍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 또,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 주장한 건 자신이 아니라 아낙사고라스고, 그의 가르침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함부로 자기 생각인 것처럼 말하겠냐며 이 또한 자신을 음해하는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고발 내용이 너무 형편없어서 이 정도 반박만으로도 항변이 충분할 것 같다 하고,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비방이 잦아들진 않겠지만 자신은 계속 진리를 탐구하는 길을 가겠노라고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오늘날 세간에서는 보통 공자를 '유교의 창시자' 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적어도 공자는 자신이 무언가의 창시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공자는 다만 스스로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예악(禮樂) 전통을 정리하고 계승했을 따름이며, 자신의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옛 성왕(聖王), 성현(聖賢)의 행적에 깃든 참뜻을 밝혀낸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은 아니다."는 말은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사상을 잇는 것이었다. 실제로, 흔히 유교 문화로 알려진 것들 중에는 공자 이전부터 있었거나 혹은 나중에 가서야 형성된 관습들이 많다. 또한, 공가(孔家)라고 부르지 않고, 유가(儒家)라고 부르는 것도 후대의 학자들이 이런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