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禁備嶺(금비령)4 남편은 아내에게 달려들어 ''이 화냥년!'' "그게 할짓이냐?" "생전 모르는 놈에게 젖을 먹였어?" 남편은 흥분하여 아내를 마구 때렸습니다. 아내는 정신없이 얻어맞고 이마에는 피까지 났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아내는 애웠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제발 !"하며 남편 앞에 무릅을 꿇고 빌었습니다. 겨우 살아나 생명을 구하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나 남편의 매질을 가까스로 막으며 말했습니다. ''잠시 참으시고, 내말 좀 들어 보시오!'' 하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불난데 기름을 끼얹은 듯 ''뭐라고?'' 이 자식아!"하며 다짜고짜 박문수어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습니다. 어사는 "어이쿠!'' 하며 쓰러젔습니다. 몸이 온전히 성치못한 암행어사 박문수는 코피를 쏟으며 벌렁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더욱 화를 못참아 ''이 새끼! 죽여 버리겠다!'' 남자는 쓰러져 신음하는 박어사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또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뿐 아무도 그 싸움에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풍석은 누구인가? 풍석은 누구인가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 선생은 1764(영조 40)년 11월 10일 아버지 서호수와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나, 1845(헌종 11)년 향년 82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禁備嶺(금비령)3 그 여인의 마음은 죽어가는 그 사람을 산중에서 홀로 죽어 가도록 그냥두고 산길을 내려 갈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를 부축하며, 고갯길을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 갔습니다. 한편, 앞서 내려갔던 아낙들은 동네앞에 모여 입에 거품을 물고, 젖을 먹여준 그 아낙에 대해 입방아를 찧으며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지?'' ''그래요" "서방 있는 년이 그따위 짓을 할 수가 있어?'' 못된 년이야! 하며 그 여인을 "몹쓸년" "화냥년" 하며 욕을 하였습니다. 그 말은 남편에게 까지 전해지고 남편은 참을 수 없이 분노 했습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빠드득 갈았습니다. ''절때로 용서하지 않겠다"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다?'' "오면 죽여 버리겠다"며 도착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아내는 머리에는 산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의 어께를 부축하고 동네 어귀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던 동네 사람들 사이로 돌진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이었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禁備嶺(금비령)(2) 대여섯명의 아낙들이 산에 나물을 캐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웬 사람이 여기있지?'' ''옷차림을 보니 거지인가 봐!'' ''죽었나?'' "글쎄?'' 그런데 그 남자는 "물! 물! 물!'' 하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그러나 기운이 없어 모기보다 작은 소리로 외치는 어사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한 젊은 아낙이 있었습니다. "딱하기도 해라!" 이 높은 산골짜기에 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사람의 곁에 다가가서 퉁퉁 불은 하얂고 풍만한 젖을 꺼내 그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그 남자에게 젖꼭지를 물렸 습니다. 옆에서 보고있던 같이갔던 아낙들은 혀를 찼습니다. "쯧" "쯧" ''어머, 세상에!'' ''망측해라! 하며 모두들 수근거렸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젖을물려!'' 아낙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빈정댔 습니다. 쓰러져 죽어가든 그 남자는 젖꼭지가 입에 닫자마자 갓난 아기가 어미 젖을 빨듯 품에 파고들어 얼마나 세차게 빨든지 젖꼭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한참동안 정신없이 빨더니 다소 갈증이 가시게 되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禁備嶺(금비령)(1) 준비 없이 산을 넘지말라. 경북 안동시 풍산읍 산이 너무 험하고 고개가 높아서 한번 넘어본 사람은 다시는 넘지않는 재(嶺)로 유명했습니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영조(英祖)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명으로 민정을 살피러 지리를 전혀 모른채 초행 길로 경상도 풍산땅에 갔습니다. 험한 고개를 넘다가 다 넘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 산중턱에서 지치고 허기져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짐승들 울음 소리만 계곡에 울려 퍼젔습니다. 주저앉은 암행어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 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배는 고프고 지치고 목은 타들어 갔습니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기를쓰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듣지 않았습니다. 목은 마르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높은 산에서 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어쩔수 없이 그자리에서 꼬박 사흘을 미동도 못하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산중 길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도와 주시오.'' 큰소리로 구원을 요청 하려고 생각 했지만, 탈진하여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가끔 인기척이 날때마다 ''물! 물!'' 을 외쳐 보지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회장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한국식품산업협회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1969년 창립 이후, 국민 보건 증진과 국내 식품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식품 기업들이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 구조적 문제들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협회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현안에 대응함에 있어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 대안을 고민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 제안을 통해 회원사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협회는 이제 50년의 성공을 넘어 또 다른 5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50년의 기반위에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협회가 되기 위해 회원사 여러분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겠습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 이효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