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尹대통령 “초급간부 사기 중요” 처우 개선 예산 대폭 증액 [초급 간부들이 흔들린다] [下] “일반 공무원보다 대우 안 좋아” 내년 국방비에 적극 반영 추진 노석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청사를 초도 방문, 공군 항공점퍼를 착용한 채 이종섭 국방부 장관, 원인철 합참의장 등 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윤대통령은 초급장교와 실무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이들의 애로 사항을 들었다.2022.5.30/뉴스1 정부는 초급 간부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군 간부가 일반 공무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대폭 증액으로 예산 방침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9일 본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추 부총리에게 군 간부 처우 개선을 잘 챙길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옆 건물인 국방부·합동참모본부를 걸어서 방문해 초급 장교·실무자들과 오찬하면서 직접 애로 사항을 들었다. 구체적인 예산 규모는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尹, 6·25 73주년 맞아 “피 묻은 군복 의미 기억해야” 이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을 참배하며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6‧25 전쟁 발발 73주년을 맞은 25일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73년 전 오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며 “미군 178만명을 포함해 유엔군 195만명이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이어 “3년여간 이어진 전쟁에서 62만명의 국군과 13만명의 미군을 포함한 15만명의 유엔군이 전사, 실종, 부상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강력한 힘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한다”며 “공산 세력의 침략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 자유를 지켜낸 영웅들의 희생이 헛되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남침 막으려 첫 북파한 부대원, 240명 중 23명만 생환했다4 호림부대원 중 단 두 명만 살아있어 송옹의 이런 행적은 다른 호림부대원들도 겪었다. 일부 대원들은 북파 뒤 공비 토벌에 나섰다. 한때 860여 명에 달했던 부대원 중 현재 살아남은 이는 단 두 명이다. 송옹과 강모(92)옹이다. 이 두 명 중 송옹만 북파 경력이 있다. 결혼도 하기 전인 20세 전후에 활동한 이들이 많아 유족도 거의 없다. 이름을 바꾸고, 대원들도 흩어지면서 호림부대는 잊혔다. 정규필 회장은 “2004년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호림부대가 세간에 다시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송옹은 두 차례 정부에 유공자 신청을 했다. 2019년 건은 기각됐고, 지난해 건은 계류 중이다. 정 회장은 “2019년 건은 국방부에서 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관한 법률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외국군에 소속되었거나 군 첩보부대의 창설 이전에 구성돼 유격전 등에 종사한 경우는 이를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육군 첩보부대(HID)는 육군본부 정보국 공작과에서 독립해 1951년 3월 발족했는데, 한국전쟁 이전의 특수 임무는 보상 대상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남침 막으려 첫 북파한 부대원, 240명 중 23명만 생환했다3 생존한 두 명의 호림부대원 중 유일하게 북파 경력이 있는 송이남(가명)옹은 “정부 보상 등 대가를 바라며 인터뷰하는 것처럼 비치는 건 원치 않는다”며 정면 사진 촬영을 꺼렸다. 최영재 기자 5대대와 6대대에서 북한군에 생포된 호림부대원은 인민재판을 받았고, 김일성이 참관한 가운데 처형됐다고 한다. 1949년 9월 11일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인민재판 과정은 1990년과 2000년 국내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 이 자료에는 북한 측 검사가 “호림부대는 남한의 채병덕 참모총장 등 육군 수뇌부가 직접 조직한 특수부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송옹은 “당시 이승만 정부는 호림부대의 실체를 부인했다”며 “한국전쟁이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라는 주장의 빌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9연대인가, 용산에 우리 연대(당시 용산 주둔 부대는 17연대)가 있었는데 북에서 철수한 뒤 어느 날 우리를 줄 세우더라고요.” 송옹은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고 얼마 뒤인 1950년 8월에 입대했다. 송옹은 “(원산 인근의) 이원은 상륙하기 아주 좋은 해안”이라며 “우리(미 7사단)는 (함경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남침 막으려 첫 북파한 부대원, 240명 중 23명만 생환했다2 붙잡힌 대원들, 김일성 참관 속 처형돼 호림부대는 1949년 7~8월 38선 이북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9월부터 지리산·보현산·팔공산 등에서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호림부대의 실체를 알리려는 호림안보협의회의 정규필 회장(예비역 대령)은 “대통령령 37호로 만들어진 부대였음에도 당시 이승만 정부는 실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송옹이 밝힌 실체 부인의 과정은 이렇다. 호림부대는 2, 3, 5, 6대대로 이뤄졌다. 1949년 6월 29일, 5대대와 6대대 240명이 먼저 북으로 올라갔다. 5대대와 6대대는 북에서 유격전을 벌이고, 소련 군사 장비를 실어나르는 원산~양덕 간 철로의 터널과 교량을 폭파하는 게 주요 임무였다. 하지만 작전의 결과는 처참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북한군에 의해 궤멸당하고 만 것이다. 호림안보협의회에 따르면, 240명 중 203명이 전사했고, 14명이 포로로 잡혔다. 생환자는 23명에 불과했다. 북한은 생포 호림부대원이 44명이라고 밝혔다. 5대대, 6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나선 3대대는 철수 명령을 받고 7월 14일 서울 용산 기지로 복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부부 첩보원·5형제 유격대… 6·25 비정규군 공로자들1 전세를 뒤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부대엔 부부 첩보원인 이철(남)·최상렬(여)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훗날 육군 장교가 돼 비무장지대(DMZ)를 지키는 소대장이 됐다. 국방부는 이날 고인이 된 이철·최상렬 부부를 비롯해 이름 없이, 계급장 없이 6·25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숨은 영웅’과 이들의 유가족, 관련 단체장 등 18명을 서울 용산 육군회관에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철·최상렬 부부 첩보원의 장남이자 1976년 육군 장교로 임관해 최전방 GOP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이성훈(70) 선생도 참석했다. 그는 GOP 근무 중인 1977년 비무장지대(DMZ) 작전을 하다 지뢰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한 국가유공자다. 그는 이날 휠체어를 타고 웃는 얼굴로 육군회관에 나타났다. 켈로부대 부부 첩보원 고(故) 이철·최상렬 대원의 장남 이성훈(앞줄 맨 오른쪽)씨 등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유족들이 2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열린 국방부 초청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중앙SUNDAY 심층기획 남침 막으려 첫 북파한 부대원, 240명 중 23명만 생환했다 중앙선데이,김홍준 기자 한국전쟁 종전 70년 기획 호림부대는 1949년 7~8월 38선 이북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9월부터 지리산·보현산·팔공산 등에서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알려주시게.” 93세 노인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보다, 그것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니 내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앉은 송이남(가명)옹은 그러면서 기자의 손을 더듬더듬 잡았다. 하지만 74년 전을 떠올리자 범처럼 날랬던 북파 부대원이 돼 있었다. 지난 8일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에서 송옹을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북파 부대에 대해 2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소속은 육군정보국 호림(虎林)유격부대 2대대. 부대라지만 계급도, 군번도 없었소. 북한에 침투한다는 특수임무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오.” 송옹에 따르면, 1949년 2월 대통령령 37호에 따라 육군 수색(水色)학교가 설립됐다. 이후 호림유격대부대로 이름을 바꾼다. 이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원들이 주축이었다. ‘호림’은 평안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중앙SUNDAY 심층기획 “알바보다 보수 낮고 승진 느려” MZ 공무원 65% 이직 의향 오유진 기자 공무원 퇴직 러시 지난 4월 8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학교에서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을 보려는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관세청 소속의 4년 차 9급 공무원인 정모(29)씨는 최근 의원면직(자발적 퇴직)을 결정했다. 모든 걸 쏟아부으며 도전했던 공무원 시험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직자가 됐음에도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월급에 회의감을 느껴서다. 정씨는 “타 직무에 비해 승진도 느린 데다,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180만원 수준의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며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거의 없지만, 의원면직 후 재취업이나 창업에 도전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퇴직 이유를 밝혔다. 잘릴 걱정이 없어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무원이 점차 ‘비인기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45.2%는 ‘기회가 되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젊은 공무원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軍에만 애국 페이 강요 안돼… 같은 직급 공무원 대우를” [초급 간부들이 흔들린다] [下] 전문가들 “국가적 차원 접근 필요”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공군사관학교 71기 신임 장교들이 지난 3월 8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열린 71기 졸업식 및 임관식에서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로 임관해 각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초급 간부 위기 문제를 해결하고 우수한 초급 간부를 확보하기 위해선 범정부·정치권 등 국가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 공무원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는 등 처우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민구 전 국방장관은 9일 “초급 간부 문제는 인구 급감, 사회적 분위기, 정치권의 군 관련 포퓰리즘 정책 등이 얽힌 복합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국방부와 군에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 되면 안 된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협력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초급 간부도 병사와 같은 MZ세대라는 인식 필요하며 이른바 ‘애국 페이’ ‘열정 페이’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초급 간부 위기가 최근 갑자기 생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중앙SUNDAY 오피니언 제3전선 정보전쟁 공개 처형당한 정보원, 이스라엘 국민 하나 되게 했다 [제3전선, 정보전쟁] 3차 중동전 승리, 이스라엘 정보력 〈하〉 이스라엘이 개전 6일만에 제 3차 중동전쟁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요원들의 활약으로 상대방의 군사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편에서 설명한 대로 전설적인 모사드 요원 엘리 코헨은 시리아의 전략 요충인 골란고원의 전력 배치와 방어계획까지 속속들이 정보를 파악했고, 심지어 공중에서도 잘 보이도록 부대 곳곳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게 하여 공습 표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코헨은 자신이 목숨 걸고 빼낸 정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코헨, 이스라엘 승리 못 본 채 교수형 부인 나디아와 함께한 엘리 코헨. 코헨은 1965년 5월 1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공개 교수형을 당했다. [사진 이스라엘방위군 홈페이지] 수집한 정보를 이스라엘로 송신하다 체포된 코헨은 1965년 5월 18일 새벽 3시 35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시리아는 이 장면을 전세계에 공개했다. 이를 지켜본 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