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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조각가 김종영. /김종영미술관

평생 이렇게 심오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김종영은 어떻게 살았을까? 의외로 그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평범했지만 모두가 존경한 삶
생전의 조각가 김종영. /김종영미술관

평생 이렇게 심오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김종영은 어떻게 살았을까? 의외로 그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는 해방 후 1948년부터 1980년까지 평생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지냈다. 오로지 학교와 집을 왕래한 것이 그의 생활 반경의 전부였다. 집에는 제대로 된 아틀리에도 없었기에 그는 주로 마당에서 작업했다. 동네 사람에게 망치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해서, 그의 집은 삼선교 부근 언덕 꼭대기 인적이 드문 달동네에 있었다. 그의 아내는 “사또 할아버지에게 업어 키워진 귀한 손자”가 달동네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김종영을 마음 깊이 존경했다.

학교에서도 그는 매우 평범한 생활을 했다. 학생들에게 미술해부학을 가르쳤고 조소 지도를 했지만, 대체로 말수가 적었고, 말을 해도 어눌한 편이었다. 한마디씩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나 격언을 던지듯이 했을 뿐이다. 작품 발표도 거의 한 적이 없었기에, 김종영이 평소 무엇을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만, 미대 건물 복도 끝 김종영의 방에서는 매일 일정한 속도로 망치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 망치 소리가 진정한 ‘무언(無言)의 교육’임을 알아들었다. 이상하게도 서울대 미대생이라면 모두 김종영을 존경했다.

1982년 67세를 일기로 김종영이 타계하고서야 그가 평생 무엇을 만들었는지 전모가 밝혀졌다. 그는 총 220여 점의 조각과 2000여 점의 서예, 그리고 3000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다. 그가 이렇게 많은 서예와 드로잉 작업도 했는지는 가까운 이들조차 잘 몰랐다.(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