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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궐에서 자란 김종영

동요에 나오는 ‘꽃대궐’을 짓고 가꾼 이는 김종영의 증조부 김영규였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꽃대궐에서 자란 김종영

경상남도 창원 소답동에 있는 김종영 생가. /김종영미술관
동요에 나오는 ‘꽃대궐’을 짓고 가꾼 이는 김종영의 증조부 김영규였다. 그는 대한제국 말 장례원 전사, 지금으로 치면 차관급 직위까지 올랐던 이였으나, 나라가 망하자 모든 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왔다. 비서원 승지를 하던 아들(김종영의 조부)도 데리고서. 그러니 이 학식 높은 양반들이 창원에서 마을을 돌보고 후학을 기르는 일에만 전념하며 세월을 보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나눌 우국지사들이 그 집에 드나든 것은 당연했다. 일본 천황이 주는 작위를 거절하고 은거했던 석촌 윤용구, 왕가 자손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 이력을 가진 의친왕 이강이 그의 집 당호(堂號)를 써준 것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김종영은 할아버지에게 업혀 지냈다고 할 만큼 사랑을 독차지한 집안의 장손이었다. 그의 아버지 김기호는 아예 출사(出仕·벼슬을 해 관아에 나감)한 적이 없다. 출사할 나이에 일제강점기가 되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그는 평생 처사로 지내며 학문을 갈고닦았다. 동양의 전통사상을 깊이 연구했고, 아들 김종영을 직접 교육시켰다. 김종영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초등학교는 아예 가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증조부, 조부, 부친의 사랑과 가르침을 자연스레 체득했다(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