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전체메뉴

닫기

◇엄마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

-제목은 왜 ‘전쟁 같은 맛’인가요. “말년에 엄마는 식욕을 잃고 음식을 거부하곤 했어요. 라면과 과일 통조림만 드실 뿐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습니다. 올케가 분유를 드렸더니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라고 하셨지요. 미국이 식량 원조로 준 분유를 먹고 (유당 불내증 때문에) 복통과 설사로 고생한 사람이 많았다는 자료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엄마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
비가 내려 축축한 날이었다. 인터뷰에는 그레이스의 아들 펠릭스(10)가 함께했다. 13년 만에 한국에 왔다는 그레이스는 “이번 방한은 내 자식과 같이 왔다는 점이 특별하다”며 “고향 부산을 비롯해 엄마와 외할머니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면.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어머니에게 발병한 조현병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연구입니다. 상당 부분은 전쟁과 가족 상실, 미군을 위한 매춘 등 한국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다른 하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10여 년 동안 제가 엄마를 위해 해드린 한국 음식에 대한 회고록입니다.”

-제목은 왜 ‘전쟁 같은 맛’인가요.

“말년에 엄마는 식욕을 잃고 음식을 거부하곤 했어요. 라면과 과일 통조림만 드실 뿐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습니다. 올케가 분유를 드렸더니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라고 하셨지요. 미국이 식량 원조로 준 분유를 먹고 (유당 불내증 때문에) 복통과 설사로 고생한 사람이 많았다는 자료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맛이었을까요.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볼 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잖아요. ‘전쟁 같은 맛’은 잊고 싶은 시절의 고통을 불러내는 맛이겠지요. 듣는 순간 ‘책 제목이 되겠구나’ 직감했어요. 음식 회고록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만 소환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끝난 전쟁이 아니라 현재에도 무엇과 연결돼서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면서.”

그레이스 조가 엄마의 생애를 복기해 쓴 회고록 '전쟁 같은 맛'. /글항아리
-성명이 Grace M Cho인데 외할머니의 성(姓)이라고 들었습니다.

“모계를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오빠와 올케 등은 과거를 덮어두고 싶어합니다. 저는 엄마의 진실을 말하되 다른 가족은 보호해야 했어요. 그래서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의 성을 사용합니다.”

-가족사를 세상에 공개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공포보다 해야 한다는 욕구가 더 강했어요. 엄마가 말하지 않은 비밀이자 트라우마,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침묵은 우리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크게 보면 가족을 넘어서는 거대한 역사의 일부라서,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택에 어머니도 동의하실까요.

“2008년 펴낸 학술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에서 양공주 문제를 다룰 때 엄마가 지지해줬어요.”

그 책에 따르면 6·25전쟁 이후 미군을 상대로 술이나 성(性)을 파는 서비스업에 종사한 한국 여성은 약 100만명에 이른다. 10만여 명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가 사실상 기지촌을 운영했고, 혼혈아가 태어나면 해외 입양을 권장한 시절이었다.

-책에 ‘군자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고 썼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군자는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가정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전쟁을 겪으며 가족을 잃었고 ‘외국인과 살을 섞었다’는 경멸과 낙인 때문에 사실상 쫓겨났어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이주한 미국에서도 차별을 당하고 환청에 시달리며 방에 틀어박혔습니다.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죽음을 맞은 거예요.”

-어머니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까.

“엄마에게 제 학업은 당신의 과거와 얼룩을 지워내는 방편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정의에 대한 제 의식은 가족사와 더 밀접하게 얽혀 갔습니다. 오랫동안 연구 주제가 ‘트라우마로 점철된 역사’였기 때문에, 엄마의 질병 밑에 숨어 있는 뿌리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어머니가 함구한 비밀을 알게 되고 글로 옮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이상한 증상은 제가 열다섯 살 때 시작됐는데 조현병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올케가 ‘어머님이 매춘부였대요’라고 한 스물세 살부터는 엄마 인생의 맥락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며 성인기를 보냈으니 긴 여정이었습니다. 엄마의 비밀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셈이에요. 고통요? 과거에는 괴로웠지만 진실을 파헤치고(excavate the truth) 글쓰는 일로 옮겨간 다음부터는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1974년 경기도 송탄의 기지촌 풍경. /글항아리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기분
이렇게 말할 때 그레이스는 엄마의 진실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보였다. 과거를 한 꺼풀씩 들추다가 깜짝 놀라 다 덮어버리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녀는 답했다.

-왜 불가능합니까.

“가족 중에 ‘그만 멈추라’고 한 분들이 있었고 학계에서도 ‘그것은 진짜 사회학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심할수록 중요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엄마는 거대한 억압의 역사로 가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회학이 아니라는 비판은 핵심이 뭐였나요.

“미국 사회학계에는 백인 중심으로 어떤 관행과 역사가 있어요. ‘전쟁 같은 맛’은 동양적 의미의 영혼이나 귀신,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사회학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을 받은 겁니다. 이 일은 2008년 엄마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며 심리치료 겸 추도사처럼 시작한 거예요. 글로 애도하는 장례식과 같았습니다.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어요.”


-2021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올해의 책은 금방 잊히지만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로 뽑힌 책은 기록이 남고 꾸준히 읽힙니다. 강연과 인터뷰 등으로 바빠졌지만 정말 뿌듯했어요.”

-이렇게 한국어판이 나온 감회라면.

“초조하고 불안해요. 혼혈인인 저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아웃사이더(국외자)였습니다. ‘전쟁 같은 맛’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감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딱 하나, 기적 같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왜 기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제 복잡한 내면을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언어 장벽 때문에 답답하고 슬펐거든요. 이 땅에 남겨둔 모든 사람, 모든 것을 이어주던 엄마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한국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어요. 엄마와 저 같은 혼혈 가족은 한국이 오랫동안 잊고 싶어한 존재라서 더 감격적이에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2021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그레이스 조의 '전쟁 같은 맛'. /전미도서상 홈페이지
-목소리를 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썼는데.

“어떤 여성이 기지촌에서 일했다는 비밀을 말할 수 없을 때, 그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선명한 자국을 남깁니다. 다음 세대로도 전달되고 유령(ghost)처럼 출몰하게 돼요. 제 정신과 무의식에 그런 유령이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긴 침묵을 깨야만 했습니다. 소외돼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의 초상을 완전한 인간으로 그려내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예요.”

-사회가 그들에게 진 빚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미국 사회는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이민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제 몸과 성노동을 바쳤지만 사회악 취급을 받은 기지촌 여성들에게 한국 사회가 진 빚도 있어요. 그렇게 만든 구조가 문제이지 그들이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숨죽인 채 유령처럼 살지 않아도 돼요.”

-아들 펠릭스에게 당신은 어떤 엄마인가요.

“엄마가 그랬듯이 저도 아이에게 굉장히 열정적이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웃음). 내 안에 엄마가 있구나 느낄 정도로. 그런데 저는 어떤 비밀도 없어요. 아이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기지촌에서 미군에게 성매매를 제공한 여성들이 “정부의 기지촌 조성·운영·관리 등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6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레이스는 “한국 사회가 이 여성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보상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릴 적 그레이스 조와 어머니 군자의 모습. 이 모녀는 1972년 여름 부산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레이스 조 제공

◇엄마가 물려준 가장 귀한 선물
딸의 성공은 엄마가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었다. 그레이스는 “내 교육은 엄마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썼다. “엄마는 제가 클 때 부엌엔 얼씬도 못 하게 했어요. 한번은 나중에 요리사가 되고 싶다 했더니 ‘안 돼! 열심히 공부해서 멀리멀리 제일 좋은 대학 가야지. 넌 의사, 변호사, 교수도 될 수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어릴 적엔 어머니가 당신을 ‘순희’라 부르곤 했다면서요.

[아무튼주말] 그레이스 조 인터뷰 영상_이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