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낳고 키우기 좋은 김포에서 어린이날을 만끽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시는 어린이날을 맞아 5일 관내 4개 공원에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김포'를 주제로, 아이들의 상상 속 세계를 현실로 옮긴 듯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특히 여러 캐릭터들과 공연팀이 함께 하는 대형 퍼레이드가 이날 하이라이트로, 만화 캐릭터 코스프레와 대형 에어 아바타, 삐에로, 고적대 등 다양한 무용팀들이 동원돼 마치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었던 연출이 예정돼 있어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민선8기 김포시는 '내 집 앞에서 즐기는 어린이날'을 목표로 거점별 다채로운 행사를 이어왔고, 올해도 네 곳의 공원에서 공연과 포토존, 이벤트, 놀이기구, 체험부스 등이 각각 마련된다. 축제는 5월 5일 10시 30분부터 17시까지 진행되며, 한강신도시호수공원과 한강중앙공원, 걸포중앙공원, 마송중앙공원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식은 행사 당일 11시에 마산동 한강신도시 호수공원에서 개최된다. 특별히 이날 기념식에는 퍼레이드 선포식과 행진이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기념식 전후에는 어린이들의 합창과 태권도 시범, 어린이 헌장 낭독도 진행된다. 마산동 호수공원에서는 캐리와 친구들 싱어롱 쇼와 버블공연, 핑크퐁과 튼튼쌤의 댄스파티 공연이 마련돼 있고 코스프레 포토존을 이용할 수 있다. 놀이기구 바이킹과 함께 총 20종의 체험부스가 열린다. 장기동 한강중앙공원에서는 핑크퐁과 튼튼쌤의 댄스파티 공연과 로보카폴리 싱어롱 쇼 공연이 열린다. 가족운동회 이벤트와 함께 바이킹을 즐길 수 있으며, 15종의 체험부스가 펼쳐진다. 걸포중앙공원에서도 로보카폴리 싱어롱 쇼와 풍선공연, 버블공연을 즐길 수 있다. 대형블럭놀이 이벤트와 놀이기구 바이킹, 12종의 체험부스가 열린다. 마송중앙공원에서는 풍선공연과 캐리와 친구들 싱어롱 쇼, 가족노래자랑 이벤트, 놀이기구 바이킹이 마련돼 있으며 13종의 체험부스가 마련돼 있다. 김포아트빌리지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김포미디어아트센터 및 야외공연장에서는 어린이날 특별 융복합 행사 '미디어+아트 놀이터'가 열린다. 인기 애니메이션 더빙 체험과 영상스튜디오 크로마키 합성 체험, VR 가상 미디어 체험 등 다양한 미디어 체험과 함께 영화, 공연, 미디어 전시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도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우리가족 예술상자 텃밭이라는 이름으로 선착순 40팀을 사전접수받아 다양한 자연소재와 재활용품 재료로 상자텃밭을 꾸미는 체험이 진행된다. 또한 선착순 500명을 현장접수받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행잉볼 만들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그외에 기획전시 '비밀의 전시' 개막과 기획전시 연계프로그램 '에코아트 워크숍', 예술인 아트마켓, 예술장터, 풍선나눔 이벤트 등이 마련돼 있다. 김포시 관계자는 "어린이날 당일은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만큼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한다. 공원에서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돗자리와 모자 등을 준비하면 더욱 쾌적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김포시청 보도자료
남양주시(시장 주광덕)는 지난 24일, 정약용유적지에서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 수강생을 대상으로 현장 답사 교육을 진행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답사는 정약용 선생의 차 사상과 철학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시민들의 전통 차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다산 정약용 브랜드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 수강생 25명을 비롯해 남양주시 다산차회 김묘실 회장과 회원 20여 명,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관계자 등 총 50여 명이 참여했다. 시는, 답사를 ▲여유당에서의 차담회 ▲정약용유적지 관람 ▲마재마을 및 생태공원 탐방으로 구성해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 수강생은 "정약용 선생의 사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라며 "시민이 주체가 되어 전통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운영되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주광덕 시장은 차담회를 통해 수강생들과 함께 차를 나누며 정약용 선생의 차 사상과 현대적 계승 방안에 대해 소통하고, 시정 철학과 시민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직접 의견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주광덕 시장은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 수강생 여러분, 그리고 남양주 전통차 보급에 헌신하고 있는 김묘실 다산차회 회장과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라며 "또한 본 교육을 성실하게 운영해 준 성신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가 차 한 잔 속에서 정약용 선생의 철학을 되새기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도시 남양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라며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의 경험이 시민 여러분의 삶에 깊이 있는 울림으로 남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는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시는 오는 6월 26일까지 총 30회 과정으로 '다산차 시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전통차예절지도사 자격 취득을 위한 기초 및 심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남양주시청 보도자료
옥천군이 장령산자연휴양림 내 '숲속동굴'을 새롭게 조성해 25일 개장식을 가졌다. 이날 개장식에는 황규철 옥천군수 및 군 관계자 20여 명이 함께했으며 황 군수의 인사말 이후 테이프 커팅식, 숲속동굴 체험 순으로 진행됐다. 숲속동굴은 장령산자연휴양림 내에 위치하며'숲과 동굴, 그리고 소원'을 주제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복합 힐링 공간 조성을 목표로 한다. 2019년 국토교통부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이 사업은 국비 20억 원, 군비 31억 원 등 총 51억 원을 들여 장령산자연휴양림의 유휴시설이었던 금천계곡 철광산을 소원바위와 소원폭포, 갱도와 광차모형 등 다채로운 포토존과 스토리텔링이 접목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동굴 입구에는 묘목의 고장 옥천을 상징하는 자연목 조형물과 숲의 울창함이 방문객이 맞이하며 중앙에는 갱도와 광차, 거미모형 등 오감으로 체험하는 동굴 탐험의 재미를 선사한다. 종점부는 중봉 조헌 선생이 승리를 기원했다는 전설 속 소원바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조명이 비추는 소원폭포 및 소원패 전시대를 마련했다. 특히, 관람객이 직접 소원패를 작성해 전시대에 걸 수 있도록 구성된'소원 체험'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기억을 남기고 마음을 담는 감성 콘텐츠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규철 옥천군수는 "장령산자연휴양림은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피톤치드가 도내 휴양림 중 가장 많이 배출되는 힐링명소"라며"이번에 개장하는 숲속동굴이 새로운 가족단위 체류형 관광자원으로 발돋움하여 우리 군의 생활인구를 증대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옥천군청 보도자료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 제자 3,000명에 육박하는 제자들을 육성하여[32], 이후 전국시대의 인재풀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수받은 72명의 제자가 있고, 다시 그 중에서도 뛰어난 10명의 제자를 공문십철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사람들이 대륙 곳곳으로 진출해서 상당수의 제자백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자도 공자의 학문을 좀 더 보편주의화시킨 인물이고, 보통 법가로 알려져 있는 상앙은 공자의 제자 자하가 위나라에 세운 학교에서 배출된 인물이고, 한비자나 이사 등은 순자의 제자였다. 그러니까 자공, 자로 등의 주요 인물만 대단한 게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이 이후 전국시대에 활약한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게 된 것이다. 공자가 유랑생활 할 때도 공자의 제자들은 수시로 다른 나라로 가서 일을 하기도 하고, 그들의 소개로 공자가 초청되기도 했다. 특히 공자가 10여년 동안 유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벌이었던 자공의 경제적 지원이 컸다. 공자가 마냥 가난했다고만 생각하는 건 착각. 군주나 고위관료들과 교류하려면 최소한의 경제적 수준은 있어야 된다. 노나라에 돌아왔을 때도 공자는 집에 마굿간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고급 세단 몇 대는 굴렸다는 뜻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확고하게 굳어진 신분제도가 없었다. 물론 노비 같은 게 있기는 한데, 신분적으로 규정된 노비가 아니다. 공자는 가르침을 베푸는데 있어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제자이자 친구인 자로도 들에서 살던 양아치였다. 공자 본인도 산골에서 태어난 천한 사생아나 다름없었다. 공자는 어릴 때 천하다며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꽤 오랫동안 아버지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오나라 재상(大宰, 태재)이 공자를 보고 "정말 성인이시다. 다방면으로 재주가 넘치시니."라고 재주가 많음을 비꼬았는데, 이를 들은 공자가 말했다. 그가 나를 잘 아는구나. 나는 어렸을 때 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잔재주가 많을 뿐이다. 군자가 재주가 많아야 할까? 꼭 그렇진 않은 법이다.[33] 6.1. 공자의 제자 목록 안회 - 논어에서는 공자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수제자로 나온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로 일찍이 공자가 '나는 그가 진보하는 것만 보았지 정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34]고 말한 적이 있지만, 공자보다 일찍 죽는다. 안회의 죽음을 들은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天喪予, 天喪予!)라고 탄식하며 슬퍼했다. 자로 - 논어에서는 무골(武骨)에다가 성격도 드센 전형적인 호걸형 인물로 나온다.또한 대부의 가신을 지낼 만큼 정치적 능력도 상당했다. 공자에게 면박을 많이 받지만 칭찬도 받고 공자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후에 위(衛)나라 공실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젓갈로 담겨진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한 공자의 행동이 자기 집의 젓갈을 모두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 것이 공자식인설이라는 루머로 퍼졌다. 안회와 더불어 공자에게 가장 중요한 제자였는데 자로가 죽은 소식을 듣고 안회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외쳤으며 자로가 죽은 다음해에 공자도 사망했다. 자공 - 논어에서는 머리가 비상하고 언변에 뛰어나며 장사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먼치킨으로 나온다.굉장한 부자였는데,이 재산으로 공자학단을 경제적으로 후원해 줬다. 공자가 세상을 떠났을때 무려 6년상을 치렀을 만큼 공자에 대한 존경심이 엄청났다. 증자 - 공자에게서 우직하지만 아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나이 차이가 거의 50살이나 나서 공자 사망 당시 20대였기에 공자와 대화하는 내용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오히려 증자의 아버지인 증점이 더 많이 등장한다. 다만 논어가 증자계파에서 완성되었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덕분에 공자를 계승한 유학자들의 특징은 역시 강렬한 현실 참여 의식과 지적 자산에의 갈구를 들 수 있다. 아무리 잘난 집안이라도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욕을 먹는다. 다른 문화권 지배계급은 공부 압박을 그렇게 심하게 받지 않았다. 공부가 입신양명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각광받지도 않았고. 당연히 공부를 하려면 돈이 들고 명청대 중국 사족들은 상업이나 소작료 받기 등 공부와 아무 관련 없는 일로 돈을 잘 벌기도 한다. 근데 그렇게 돈이 생기면 일단 자식을 공부시킨다. 조선도 마찬가지라서 아버지가 고위 관료면 자식이 음서로 관직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음서로 커리어 시작한 사람들도 절대 다수가 공부해서 과거를 다시 본다. 음서는 그냥 호봉이랑 짬밥 좀 쌓으려고 깔아두는 것일 뿐. 게다가 음서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낙하산 인사라는 경멸의 시선이 엄청났기 때문에 음서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렇게 현대 한국, 일본, 중국의 공부열이 설명될 수 있고 나아가 공부에 집착하는 서양의 아시안 스테레오 타입이 생긴것도 이런 연유라고 할 수 있다.[26] 다만 불교 국가 고려에서는 유교의 교세가 조선만큼 강하지 않았던 데에다 문벌 귀족의 관직 독점 문제가 심각하여 음서 출신도 조선처럼 멸시받지 않아 과거에 목 맬 필요가 없었다. 또한 스스로 전차를 잘 다룬다고 했는데, 전차를 모는 사람은 지휘관이자 전사를 의미한다. 공자의 키는 9척 6촌[27]이 넘는 거구였기 때문에 당연히 육체적 능력이 허당이었을 리가 없다. 덩치도 덩치지만 공자는 목수 일이나, 장의사일, 전차 몰기, 창고지기 등 온갖 궂은 노동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심지어 그 자로[28]를 무력으로 제압했다는 얘기도 있다. 위에서 말한 육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제자들에게 군사교육도 했던 사람이다. 춘추시대 때는 문관과 무관의 구분이 없었다. 공자는 본래 무장을 배출한 가문 출신이고[29], 공자로부터 무예와 군사를 부리는 일을 배운 제자도 있었다. 공자가 제나라에서 첫 관직생활을 했을 때부터 그를 증오하는 자들의 습격으로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공자가 호신술을 제대로 안 익혔으면 후에 노나라로 돌아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원래 춘추시대의 당대의 사(士)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 계급이었다. 평소에는 정치를 하고 전시에는 전쟁을 하는 것이 사(士)였다. 즉, 공자의 집단은 거의 무장세력이었다. 당대에는 이런 무장세력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것을 제자백가라 부른다.[30] 물론 싸움만 하는 건 아니며 국가를 운영하고 행정업무를 다루기 위해서 학문도 갈고 닦았다.[31] 참고로 고대에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재산과 지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무장은 개인돈, 또는 지휘관의 돈으로 구비하던게 근대 이전 이야기여서 덕분에 군대의 의장과 무기는 각양각색이었다. 즉 돈 없으면 전쟁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약탈하는 권리 또한 개인의 지위와 재산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였다. 그 때문에 지휘관이나 피 정복민은 그를 막으려면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의 권리가 커져 고대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한 것도, 그리스 군대가 시민들로 구성된 중장 보병부대 위주로 구성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경제력과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구리시(시장 백경현)는 지난 4월 22일 시청 5층 재난안전상황실에서 '2025 구리 유채꽃 축제'를 앞두고 축제 안전관리계획 심의를 위한 구리시 안전관리 실무위원회를 개최했다. 실무위원장인 김완겸 행정지원국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구리시 안전관리 실무위원 19명과 유관기관 관계자 8명 등 총 28명이 참석하여 축제 안전관리계획을 심의했다. 특히, 5월 9일 전야제 행사의 드론쇼와 11일 폐막식 행사의 유명 트로트 가수 축하공연 및 불꽃쇼 시간대에 많은 인파 밀집이 예상됨에 따라, 축제장 내 주요 거점별 안전관리 요원 배치 계획과 인파 밀집 상황 관리 대책 및 교통 대책 등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분야별 안전 점검 체크리스트에 따라 축제장 설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했다. 김완겸 실무위원장은 "8호선 개통을 통한 교통 여건 개선으로 접근성이 좋아져 구리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많은 관람객이 축제장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실무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안전관리 대책을 재점검하고 철저한 사전점검을 통해 안전한 축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시는 축제 시작 전날인 5월 8일 구리소방서, 구리경찰서,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관계기관 및 민간 전문가 등과 합동으로 축제장 사전 안전 점검을 시행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구리시청 보도자료
군산시(시장 강임준)는 갑오징어 자원의 지속 가능한 관리와 지역 수산물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 갑오징어 홍보 캐릭터 '갑토리'(이하 '갑토리')를 개발했다고 이달 25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국가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갑오징어 산란·서식장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진행되었다. 시는 캐릭터 '갑토리'의 친근함을 통해 군산의 대표 수산물인 갑오징어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하였다. 또한 '갑토리' 디자인·상표 출원도 진행했다. 이는 해당 캐릭터를 상표법, 디자인보호법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무단 사용으로부터 보호함과 동시에 유사한 디자인에 대한 권리도 독점하기 위해서다. 군산 갑오징어 위판량은 전국 대비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마리당 단가도 일반 수산물의 평균 2.84배로 고부가가치 어종이다. 시는 어업인이 선호하는 품종인 '갑오징어' 자원증대를 위해 전방위로 노력 중이다. 특히 군산시는 갑오징어를 군산을 대표하는 수산물로 육성하고자 산란서식장 조성과 홍보 동영상 제작·송출, 캐릭터 개발 및 새만금마라톤대회 홍보부스 운영 등을 추진해왔다. 앞으로도 군산시는 갑오징어를 지역 대표 어종으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갑토리' 활용 홍보물 제작 ▲각종 축제 등에 홍보 및 판매 부스 운영 지속 등으로 관광객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예정이다. 이성원 어업정책과장은 "갑오징어 산란서식장 조성과 함께 해당 어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홍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이번 캐릭터 개발이 군산 갑오징어를 널리 알리고, 지역 수산업과 관광 활성화에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군산시청 보도자료
평택시(정장선 시장)는 2025 제13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위해 지난 23일에 2025년 경기정원문화박람회 행사 대행 용역 착수보고회를 가졌다. 오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평택시 농업생태원에서 개최될 2025 제13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착수보고회에는 정장선 평택시장과 전문가 자문위원, 평택시 관계부서, 경기도 정원산업과 등 50여 명이 참석해 박람회 세부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보고회에서는 ▲박람회장 공간 구성 ▲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 ▲개막식 및 홍보계획 ▲전시 정원 등을 보고했으며, 이번 착수보고회에서 나온 전문가 자문위원의 의견제시를 바탕으로 사업계획을 더욱 구체화해 다음 중간 보고회를 열 계획이다. 정장선 시장은 "평택시라는 도시가 잘 표현되도록 평택시만의 독특한 정원박람회를 알차게 준비할 계획이며. 이번 정원문화박람회를 계기로 정원도시로 도약하겠다"라고 밝혔다. 평택시는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박람회장 부지 조성, 작가 정원 공모, 미리보기 행사 및 시민추진단 발대식 등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편집자주 : 이 보도자료는 연합뉴스 기사가 아니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합뉴스가 원문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출처 : 평택시청 보도자료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공자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육예(六藝)라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예는 그냥 예의범절이 아니라 각종 공식행사의 의례 절차를 배우는 것. 이걸 배우면 당장 외교나 제사 등의 국가행사를 주관할 능력이 생긴다. 악은 음악인데, 이것도 그냥 요즘 실용음악 같은 것 뿐만 아니라 행사 때 연주할 음악을 배우는 것이라서 역시 관료로서의 실질적 교육이 된다. 또한 유교 텍스트에서는 문화 자체를 예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으므로 참고할 것. 사와 어는 활쏘기와 수레타기. 즉, 전쟁기술이다. 전차가 퇴화된 후에는 말타기로 바뀌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호신술로서 검술도 비중있게 가르쳤다. 서와 수는 문서 만들기와 회계처리라고 보면 된다. 단순 글짓기와 산수가 아니라, 공무원으로 일할 때 문서를 작성하고 세금이나 국가재정을 계산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즉, 선비는 단순히 앉아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 치면 복무신조를 달달 외우고, 장성에 대한 경례곡도 전부 암기하고, 한 명 한 명이 매일 멀가중멀가중 사격연습을 하고, 탱크도 몰 줄 알고, 세법도 배우는 올라운더인 것이다. 유교가 대충 뜬구름 잡는 철학공부라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착각이다. 후세에 내려오며 실용적 면보다 통치 이념으로서의 부분이 더 강조되었을 뿐이지. 공자는 정말 당장 관료로서 써 먹을 수 있는 실용 교육도 했던 사람이다.[24] 괜히 동양세계에서 한나라 이래 유학을 세속세계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서양에 비유하자면 국교는 기독교이지만, 통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희랍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된다. 이 육예를 서, 수 / 예, 악 / 사, 어로 나누어 현대 교육학에서 말하는 지덕체 전인교육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공자의 진짜 업적이라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을 민간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공자 이전에는 제대로 된 교육 기관이라 할 것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기관도 귀족 한정이었다. 이렇게 귀족들이 지배계층에 필수적인 기술과 매너를 폐쇄적으로 가내에서 전승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나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예물로 육포 한 다발만 가져온다면 다 가르쳐주었고, 이 이야기는 지금에 이르러선 속수지례(束脩之禮)라는 성어로 굳어졌다. 여기서 육포를 언급한 이유는, 당시 육포는 남에게 주는 예물로는 가장 격이 낮은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스팸이나 참치캔 정도 지위였다. 즉 배우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르치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가 "백성들이 많으면 넉넉하게 해주어야 하고, 넉넉하게 되면 가르쳐주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공자에게 교육이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꼭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다만 실력이 안 되면 그딴 거 없고(…) 공짜는 아니라는 의미도 숨어 있긴 하다. 이 육포를 촌지로 잘못 해석하는 반(反)유교인이 있지만 상술했듯 육포는 격이 낮아 고급 예물로는 부적절했다. 고로 '최소한의 성의, 의지'를 육포라는 것에 대유법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결정적으로 논어 향당편을 보면 공자의 음식 취향이 나타나는데 말린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공자는 자신이 배움을 좋아함을 자주 강조했다. "나는 태어나면서 알았던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구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구절에서 그 정신이 잘 드러난다.[25] 다만 공자 숭배가 심해지면서 "공자는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며 신적 존재로 숭배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고 최술은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에서 이를 강렬히 비판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오늘날 세간에서는 보통 공자를 '유교의 창시자' 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적어도 공자는 자신이 무언가의 창시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공자는 다만 스스로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예악(禮樂) 전통을 정리하고 계승했을 따름이며, 자신의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옛 성왕(聖王), 성현(聖賢)의 행적에 깃든 참뜻을 밝혀낸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은 아니다."는 말은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사상을 잇는 것이었다. 실제로, 흔히 유교 문화로 알려진 것들 중에는 공자 이전부터 있었거나 혹은 나중에 가서야 형성된 관습들이 많다. 또한, 공가(孔家)라고 부르지 않고, 유가(儒家)라고 부르는 것도 후대의 학자들이 이런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3. 호칭 이름은 구(丘).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 머리 꼭대기 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구(丘)라 했다고 한다. 자는 중니(仲尼). 원 성종 11년(대덕大德 11년, 1307년)에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사당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이기도 하다.[13] 보통 《논어》에서는 '자왈(子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줄여서 말한다. 《논어》 이외의 책에서 공자를 지칭할 때는 '부자(夫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이런 까닭은 한자문화권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보통 공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간혹 '공부자(孔夫子)'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서구 선교사들은 이 표현을 라틴어로 바꿔서 '콘푸치우스(Confucius)'라고 불렀다. 4. 교육 방식 공자의 기본 교육은 원래 노래(詩)였다. 시(詩)라는 표현 때문에 그냥 조용히 독서만 할 것 같지만, 실제로 리듬을 타면서 노래까지 불렀다.[22] 흔히 유교라고 하면 도식적으로 틀에 박힌 이야기를 듣기 쉽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공자 본인은 그렇게 틀에 박힌 스타일로 교육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시경은 가사만 전해져서 멜로디를 알 수 없는 것일 뿐이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