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4) 해체 1945년 8월 10일 일본의 패망과 8월 15일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각료들과 함께 제1차, 제2차로 귀국하였다. 임시의정원은 1946년 2월 1일 비상국민회의(이듬해 국민의회로 개칭)로 계승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재민, 3권 분립의 민주정 원칙에 입각한 민주공화정제를 채택해 헌법에 반영하였다. 이는 국가의 권력을 군주에서 국민으로 옮긴 것이다. 대한민국이 독립 후 군주제를 택한 수많은 독립국가와 비교해 정부형태와 국정운영이 민주공화정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마련한 근대민주주의의 반석위에 있는 것이다. 역대 의장 이동녕(李東寧) 1919년 4월 10일 ~ 1919년 4월 13일 손정도(孫貞道) 1919년 4월 13일 ~ 홍진(洪震) 1921년 5월 6일 ~ 홍진(洪震) ~ 1922년 4월 3일 김인전(金仁全),조소앙(趙素昻),장붕(張鵬),윤기섭(尹琦燮),조상섭(組尙燮),여운형(呂運亨) 최창식(崔昌植),이동녕(李東寧),이강(李剛),이동녕(李東寧),이동녕(李東寧),조완구(趙琬九,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3) 활동, 결성 및 대한민국 국호 및 임시 헌장 의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 10일 러시아령 연해주, 중국령, 미국령, 그리고 국내에 산재된 임시정부의 대표들 중 선출된 29명의 의원으로 개원하였다. 1919년 4월 11일까지 개최된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는 초대 의장에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를 선출하였으며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의결하였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채택하여 공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기존의 임시 헌장을 대폭 개정하여 대한민국 임시 헌법(大韓民國臨時憲法)을 공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운영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을 담당하였고 선전, 강화, 조약 체결 등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여 광복 투쟁에 대한 인적 양성을 도모하였다. 교섭단체 1940년 10월 9일부터 의정원 원내 교섭단체를 시행하였다. 이때에는 1인 정당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2) 그 결과 이들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정당인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고, 통합 임시정부 설치 및 국민 대표자 선출을 목적으로 의회 구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1919년 4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하기 위한 국민 대표자를 각 도별로 무기명투표로 선출, 중국령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수립되게 된 것이다. 선거, 피선거권 1919년 4월 10일에는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무기명 투표였으며, 1919년 4월 11일 제1차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헌법 제5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다고 명시되었다. 1919년 9월 11일의 제2차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헌법 제9조에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법률에 의하여 아래 각호의 권리를 가진다.와 제9조 제3항에 대한민국 인민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보장하였고, 임시의정원 의원들의 입법, 의회 활동에 대해 제9조 제1항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신문 처벌을 받지 아니할 권리, 제2항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가택의 침입 또는 수색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명시하였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대한 연령은 임시의정원 헌법 개정 중 1927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1)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신년 기념사진 (1921.01.01.) 대한민국 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 1919년 4월 10일 ~ 1946년 2월 6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회이며 임시정부의 입법부의 역할을 맡았다.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법 상 한국 국민을 대표하는 단체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회 구성은 각 도별 대표와 비례대표가 있었고, 의정원의 구성형태는 단원제 의회였다. 1919년 4월 10일 개원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당시중화민국 상하이에 있었다.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전조직이자 임시정부의 의회이기도 했다. 4월 10일 각 도의 지역구 의원 29명을 선발한 뒤 4월 11일 의정원 투표로 상하이 임시정부 각료를 선출했다. 4월 10일의 초대 의정원 의원은 20세 이상인 자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였으나, 1919년 9월 10일의 제2대 의정원 의원 선거에는 일부 한국인 교민들이 선거, 투표에 참여하였고 1927년 4월 11일에 발표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4차 약헌 제2장 제7조 이후에는 의정원 의원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을 만 18세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였다. 광복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적응, 완화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미래 경로 기후변화 정책 결정의 기반 기후변화와 그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 결정은 거버넌스, 윤리적 측면, 형평성, 가치판단, 경제평가, 위험 및 불확실성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대응 등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예상되는 위험 및 편익을 평가하기 위한 광범위한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 마련될 수 있다. .적응 및 완화 적응 및 완화 대응의 공동 장려 요인 혹은 공동 제약 요인 적응과 완화 대응을 모두 강화시킬 수 있는 요인을 공동 장려 요인이라고 하며, 이에는 효율적인 제도 및 거버넌스, 환경 친화적인 기술, 기반시설 혁신과 투자, 지속 가능한 생활 및 행동양식과 라이프스타일의 선택 등이 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진짜 무서운 건 원폭 이후의 사회” 그는 “진짜 무서운 건 원폭 이후의 사회였다”고 했다. “피폭자는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았습니다. 원폭으로 인해 팔·다리가 없어졌거나, 화상 입은 아이들하곤 친구들이 안 놀아줬어요. 부모들이 ‘피폭도 전염병처럼 옮는다’고 생각해서였죠.” 장훈은 프로야구 선수를 은퇴하고 60살 넘을 때까지도 피폭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사람 타는 냄새’를 떠올리는 게 무서워, 피폭 기억이 날 것 같으면 배트를 휘둘렀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일본 방송을 보다가 젊은 친구들이 ‘원폭 떨어진 지점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분노했다. 2006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일본의 한 방송에 출연해 “우리 세대는 전쟁을, 그리고 원폭 체험을 후대에 남겨놔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에 한 끼는 물로 채웠던 시절, 장훈은 큰형인 세치씨 덕분에 오사카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야간 택시 기사로 월 3만3000엔을 벌면서 1만엔을 동생에게 매달 보냈다. 온 가족의 희망으로 오사카의 나니와상고 4번 타자로 섰다. 장훈은 “한국은 세상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977년 1월 한국을 일시적으로 방문한 장훈(오른쪽)이 어머니 박순분 여사와 함께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 장훈은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의 야구밖에 모르는 사고력을 넓혀, 모국의 프로야구 설립에 더 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 여사는 “아들이 뛰는 장한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조선일보 DB 1977년 1월 한국을 일시적으로 방문한 장훈(오른쪽)이 어머니 박순분 여사와 함께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 장훈은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의 야구밖에 모르는 사고력을 넓혀, 모국의 프로야구 설립에 더 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 여사는 “아들이 뛰는 장한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조선일보 DB 그날 그의 가족도 모두 살아남지는 못했다. 장훈은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피부가 하얗고 키가 큰 6학년 누나가 그날 죽었다”고 했다. “원폭이 투하됐을 때 큰누이는 수십 명과 함께 학교에서 쓰러졌고 어머니는 열기에 녹아 얼굴도 못 알아보는 아이들 틈새에서 명찰로 딸을 찾았습니다. 누이는 언제나 하얀 얼굴이어서 같이 길을 걸으면 남들이 ‘예쁘다’고 했었는데…. 그 얼굴이 짓물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아울러, 양국의 최첨단 반도체 협력 강화는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과 경제적 불학실성 해소에 기여할 것입니다. 양국은 동맹의 성공적 협력의 역사를 새로운 신세계인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두 기술 강국의 협력은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하원의장님, 부통령님, 상하원 의원 여러분. 한미동맹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정의롭습니다. 우리의 동맹은 평화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번영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번영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미래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세계는 미래 세대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안겨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새로운 여정에 함께해주시길 당부합니다. 여러분과 미국의 앞날에 축복이,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동맹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장훈 “내 조국이니 말할수 있다...日에 사과하라, 돈내라 언제까지 할건가” 히로시마 생존 피폭자인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 인터뷰 도쿄=성호철 특파원 “무더운 여름 날씨였던 1945년 8월 6일, 당시 다섯 살이었던 저는 친구들과 밖에 놀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번쩍, 쿵’ 했습니다. 정신을 되찾았을 땐 어머니가 저를 꽉 껴안고 있었습니다. 유리 파편에 찔린 어머니의 치마저고리는 피로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10일 재일 동포 2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83)은 히로시마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여러 차례 울먹였다. 여든이 넘어서도 78년 전 기억이 생생한 듯했다. 그는 “그날 피란해서 마을의 밭에 갔는데 심한 화상에 살이 탄 사람들 천지였다. 심한 냄새를 기억한다”고 했다. 장씨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23년 동안 안타 3085개, 홈런 504개를 친 스타 선수다.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지만 한국 국적자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폭에서 살아남은 피폭자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2020년 10월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열린 '제5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 행사' 참석자들이 6·25 전쟁 전사자 명비에 헌화하는 모습. /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