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5. 경영 책임 5.1 경영 의지, 5.2 식품 안전 방침 a) 식품 사슬에서 조직의 역할에 적절함. b) 법적 및 규제 요구 사항과 상호 합의된 고객의 식품 안전 요구 사항 두 가지 모두와 일치함. c) 조직의 모든 계층에서 의사소통되고 실행되고 유지됨. d) 지속적인 적합성을 위해 검토됨 e) 의사소통이 적절하게 됨, f) 측정 가능한 목표에 의해 뒷받침됨 5.3 식품 안전 경영 시스템 기획, 5.4 책임 및 권한, 5.5 식품 안전 팀장,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또 다른 중요 측면은 교육 분야의 정책이다. 국가는 지적 자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했다. 정부는 전 국민을 위한 양질 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한국의 교육 분야 지출은 GDP(2019년)의 4%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인에게 교육의 가치는 성공적 인생을 살기 위한 우선순위다. 한국 사회에서 높은 교육 수준은 사회적 지위, 좋은 취업 전망, 심지어 성공적 결혼까지 보장한다.(출처: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편집국 유럽 특파원,조선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서유구는 숙종·영조·정조 대 저명한 관료가 많이 배출된 경화세족(京華世族)의 후예로, 이조판서를 지낸 서호수(徐浩修, 1736-1799)와 한산(韓山) 이씨(1736-1813)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1764, 영조 40). 중시조는 선조대의 명신 약봉藥峰 서성(徐渻, 1558-1631)으로, 약산춘이라는 명주가 이때에 전해졌다고 풍석은 전한다. 약주藥酒라는 말이 그에게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서성의 넷째 아들 서경주(徐景霌, 1579-1643)는 선조의 부마였다. 이로부터 2대 아래는, 풍석의 고조 서문유(徐文裕, 1651-1707)로 예조판서를, 증조 서종옥(徐宗玉, 1688-1745)은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조부는 규장각 설립을 주도한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다. 서유구는 어려서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 서명응은 영·정조 대의 중요한 학자 관료였다. 주역 등 역학에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천문·지리·농업·언어 등 다양한 방면에 저술을 남겼다. 특히 그의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는 총 60책으로 정조(正祖, 1752-1800)로부터 “조선 400년 동안에 이런 거편(鉅篇)은 없었다”는 최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보만재’도 바로 정조가 친히 하사한 호다. 풍석은 어린 시절 주로 할아버지 임지에 따라 다니며 글을 배웠고, 따라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만재총서>> 중 『위사』를 편술하기도 했고, 22세에는 농학 저술인 『본사本史』의 일부를 조부의 명을 받아 보충저술을 하기도 했다.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조선 최고의 경지에 오른 70세의 보만재가 손자에게 자신의 저술의 일부를 맡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단지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정뿐만 아니라, 풍석의 학문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풍석에게 부친 서호수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는 않지만, 고위 관료이면서 유학(철학)이나 경세학(정치학)이 아닌 분야에 특이한 취향과 전문성을 보유했다는 점은 역시 할아버지 뿐 아니라 아버지를 닮았기도 했다. 아낙네에게 필요한 가정백과사전인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인 빙허각(憑虛閣) 이씨는 서유구의 하나 뿐인 형수다. 빙허각 이씨의 남편은 서유본(徐有本, 1762-1822). 박지원에게서 동생 서유구와 함께 문장 수업을 받기도 했던 이다. 서유구의 작은할아버지는 정조의 일등공신으로 정조 재위 초기에 삼정승을 거친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이다. 작은아버지이자 서유구의 스승이기도 한 서형수도 과거 급제자로, 규장각 편찬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순조 초기 옥사에 연루되어 18년 간 귀양살이를 하기 전에는 경기관찰사를 역임했다. 풍석이 어렸을 때 가르침을 많이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학문적 벗이기도 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三十而立(삼십이립) 중앙일보 입력 2023.05.25 00:42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으며(지우학 志于學), 30대에 세상에 바로 서고(이립 而立), 40대에는 미혹됨이 없었으며(불혹 不惑), 50대에는 천명을 알게 되었고(지천명 知天命), 60대에는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림이 없었으며(이순 耳順), 70대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서 벗어남이 없었다(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 공자가 후학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이라지만, 실지로도 공자는 각 나이대마다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말로 인해 30, 40, 50, 60, 70세의 각 나이를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이런 별칭으로 자신의 나이를 말한다면 자신도 공자처럼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꼴이 되어 자칫 결례가 될 수도 있다. 30대의 ‘립(立)’이 특히 중요하다. ‘立’이 되어야 그다음 경지에도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로 섰다는 것은 예(禮)에 맞게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 가치관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요즘 30대는 경제적 자립이 힘들다 보니 ‘바르게 서는’ 예(禮)를 배우거나, ‘자기 가치관’을 확립할 겨를조차 없이 쫓기듯 사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30살에는 ‘立!’, 자신에 대한 예우를 해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출처: 중앙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교육과 살림, 30명 대가족 이끌어 “여자라고 성인 못 되나” 친정·시집 둘 다 일으킨 수퍼맘 장계향 사실 운이 다한 듯한 집안에 무남독녀를 시집보낸다는 것은 사상적 지지나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어린 남매가 기다리는 재취 자리다. 경당은 한때 자신의 문하에서 빛을 발하던 스무 살의 이시명(1590~1674)이 혹독한 변고를 겪고서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을 때 애잔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의 긴 시간을 보내면서 제자의 맑은 기운과 학문적 역량에 경도되며 스승은 딴마음을 품게 된다. 경당은 아침저녁으로 학술과 도덕을 함께 논하던 딸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자신의 딸이라면 몰락의 조짐을 보이는 한 집안을 재건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겨우 스무 살의 장계향은 실의에 빠진 시부모를 위로하고 전처소생의 어린 남매를 양육하는 등 30여 명의 식구를 건사하는 대가족의 주부로 삶의 새 장을 연다. 그녀의 가문 의식은 “남이 넉넉할 때 내 많은 재물은 자랑일 수 있지만 남이 모두 없는데 홀로 많이 가진 것은 재앙”이라고 한 말에서 드러나듯 사회를 향해 열려 있다. 이후 25년 동안 장씨는 7남 3녀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교육과 혼인을 주관하며 활발한 청장년기를 보낸다. 역병과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17세기의 외진 고을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10남매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생존과 다투는 날들이었다. 이러한 절박한 환경에서도 장계향은 직접 일구지 않은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식 교육에 도전과 노력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출처:중앙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오늘의 상생 말씀입니다 1491회 ♧ <개벽문화 북 콘서트> 대구편 제30회 진정한 새 희망의 이야기, 개벽 소식 - 우주의 노래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조화세계를 알아야 문명개벽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오는 미래 문명의 기본 성격을 이해할 수 있어요. 새로운 문명이나 세계를 새로 지을 때, 서양은 창조(創造)라 하고 동방은 개벽(開闢), 화생(化生), 조화(造化)라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조화(調和, harmony)가 아니라 지을 조(造) 자, 화할 화(化) 자, 조화(造化)입니다. 조화(造化)는 모든 변화를 조정 하는 것으로, 고통을 선의 세계로, 어둠을 밝은 세계로, 분열을 하나로 조화(調和)롭게 할 수 있는 신적 권능을 말합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이 주문은 가을 우주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많이 불러보아야 됩니다. 세속의 일반적인 노래는 사람들에게 슬픔이나 기쁨 같은 여러 가지 정서적 감동을 주지만, 사실 대부분 정서가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신명이 나서 걸그룹처럼 막 춤을 추기도 하고, 너무 깊이 감동해서 눈물을 짓기도 합니다. 정서가 무너지는 거예요. 우주의 영원한 생명의 중심에 들어가려면 정서가 전체적으로 조화돼서 진리의식, 생명의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을 받고 크게 깨달아 삶의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주문 공부입니다. 시천주, 천지의 원 주인을 모시는 때가 됐다, 조화정, 이제 인간 내면의 우주적 영성이 계발되고 실현되는 조화법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지금 어느 때에 와 있는지, 그리고 인간 역사의 목적지가 무엇인지, 이에 대한 답이 모실 시 자, 한 글자 속에 있습니다. 천주님을 모시면, 불교, 기독교, 유교를 믿던 사람, 혹은 무신론자, 세상을 즐기려고만 하는 쾌락주의자나 현실주의자, 이런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새롭게 깨어나고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로 만난다는 시(侍) 자, 하나같이 새롭게 깨진다는 시 자입니다! 내일 이어서 전하겠습니다. ♧ 동방 1만년 정통수행법 ‘빛과 소리, 꽃의 영성문화’ K-힐링 메디테이션 STB상생방송과 유튜브채널에서 저녁 8시 30분 방송 재방송 : 다음날 새벽 5시30분, 오전 11시, 오후 4시 ▶유튜브주소 : https://youtu.be/nKdLcjX29Js ▶홈페이지 : https://healing.stb.co.kr/board/live/ ▶STB상생방송 TV 채널 안내 https://www.stb.co.kr/?c=intro/164 IPTV KT 241번, SK 298번, LGU+ 277번 스카이라이프 D185번 ♧ 시천주주와 태을주 https://youtu.be/41RGYxsho64 시천주주 태을주 도공 https://youtu.be/SvsqqGHo4FE ♧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중앙SUNDAY 뉴스 스포츠 오디세이 37세 ‘킬러’는 살아있다, 잡초서 화초로 축구인생 터닝슛 정영재 기자 [스포츠 오디세이] 시련 딛고 태극마크 다시 단 박은선 #“온실 화초처럼 보호하다 월드컵 동행” 37세 늦은 나이에 대표팀에 다시 뽑혀 월드컵 출전이 유력한 박은선의 담대한 각오를 앵글에 담았다. 왼쪽 팔의 문신은 자신의 띠 동물인 호랑이. 오른쪽에는 십자가 문양을 새겼다. 콜린 벨(잉글랜드)은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다. 벨 감독은 박은선을 콕 집어 ‘월드컵에 데려 가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지난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만난 박은선은 ‘온실 속 화초’라는 표현이 어색한 듯 웃었다. 하기야 온실은커녕 폭풍의 골짜기에서, 화초는커녕 끈질긴 잡초로 살아온 박은선 아닌가. #“괴물이 나타났어. 미아 햄 넘을 거야” 2003년 여름, 이의수 당시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이 나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위례상고(현 서울동산고) 2학년이었던 박은선은 1m80㎝ 키에 남자 못지않은 스피드와 파워가 있어서 실업 선배들도 쩔쩔 매는 골잡이라고 했다. 박은선은 그해 2003 미국 여자월드컵에 출전했다.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무대를 언니들과 함께 밟은 것이다. 2004년 말 ‘1차 박은선 파동’이 났다. 그러나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집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던 박은선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월급을 주는 팀으로 가야 했다. 은사를 따라간 박은선은 3개 대회 출전금지, 서정호 감독은 2년 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박은선 성별 검사 안하면 대회 보이콧” 2013년 11월, 서울시청을 제외한 여자축구 WK리그 6개 팀 감독들은 이렇게 결의했다. ‘2차 박은선 파동’이었다. #“지금 제 축구인생은 연장 전반 10분” 자신의 현재 상태를 축구 경기에 비유해 달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37세 늦은 나이에 태극 마크를 다시 달고 월드컵 출전 기회가 생겼다. 세 번째 월드컵을 나간다면 1분을 뛰어도 최선을 다할 거고, 경기를 못 뛰면 밖에서 열심히 응원해 줄 수 있는 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출처: 중앙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이번에는 1977년으로 넘어가 볼까요? 〈작품4〉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했으며, 당시 미국 미술계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최욱경(1940~1985) 화가의 '환희'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최욱경은 미국 라스웰 재단의 입주 작가로 선정돼 뉴멕시코주에서 머무르며 작업했어요. 훗날 그녀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나의 24시간이 내가 바랐던 분위기 그 자체"였다고 말했지요. '환희'는 밝은 노랑 바탕색 위에 경쾌하게 움직이는 듯한 운동감 있는 형태들이 배치된 그림입니다. 노랑과 파랑이 곳곳에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빨강과 오렌지색이 틈틈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해요. 원색은 아련한 추억의 색이라기보다는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싶은 미술가의 충동 같은 색이에요. 더욱이 이 그림은 가로가 무려 4.5m 넘는 큰 규모로 제작돼, 작가의 거리낌 없는 창조적 에너지를 감상할 수 있답니다. 네 작품에서 보았듯, 재치 있는 표정, 애틋하고 푸근한 정서, 창작열을 불태운 열정과 에너지 등이 우리 한국인의 피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감수성이 오늘날 'K문화'에서(출처:사진,글,조선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사설] ‘민주세력’ 탈 쓰고 과거사와 참사를 밥벌이 수단 삼다니 조선일보,입력 2023.05.27. 03:26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의 소송을 대리했던 민변 출신 인사가 최근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찬성해 판결금을 받은 피해자 유족에게 “받은 돈의 10%를 성공 보수로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 해법에 반대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에 대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위원장을 맡았고 민변 과거사위원장도 지냈다. 그가 피해자와 보수 약정을 맺었던 것을 유족들은 몰랐다고 한다. 겉으론 징용 피해자를 돕겠다고 해놓고 뒤에선 돈벌이를 한 것이다. 징용 피해자를 지원해 온 한 시민 단체도 과거 피해자와 맺은 약정을 근거로 판결금의 20%를 달라고 독촉했다. 유족들이 반발하자 원 단위까지 금액을 적은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이 단체는 정부의 해법에 반대하며 돈을 받지 말라고 주장하더니 막상 유족들이 판결금을 받자 자기 보수부터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와 사참위에는 민변과 진보 단체, 노동계 등 친야·좌파 인사들이 대거 들어갔다. 전체 인원이 120명을 넘었지만 정작 선박·해양 전문가는 없었다. 특조위는 151억원, 사참위는 572억원의 예산을 썼는데 새로 밝혀낸 건 하나도 없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억대 연봉을 받았고 해외 출장 가서 수백만 원씩의 돈을 쓴 뒤 5줄이나 1장 짜리 보고서를 냈다. 문재인 정권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5·18진상조사위, 진실화해위 등 각종 과거사 조사위를 만든 뒤 친정권·시민단체 인사들을 줄줄이 앉혔다. 검찰 과거사위에는 민변 출신이 대거 들어갔다. 군진상규명위원장은 괴담을 퍼뜨린 좌파 인사의 요청을 받고 서류까지 조작해 천안함을 재조사하려 했다. 진실화해위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우면 국군·경찰로 써 넣으라’고 했다. 사실상 과거사 왜곡이었다. 과거사위에서 활동했던 민변 변호사들은 자기가 조사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챙겼다가 처벌받았다. 민주 세력이라는 탈을 쓰고 뒤에서 벌인 일은 악덕 브로커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출처:조선일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추상의 이해 1964년작 ‘자각상’. 김종영이 49세에 제작한 자각상으로, 눈을 감은 채 내면에 깊이 몰입한 자신의 모습을 나무에 담았다. /김종영미술관 이러한 환경에서 김종영이 보고 느꼈을 문제의식을 상상해 보라.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우리 전통 사상의 높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체득한 인물이다. 그 가치는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무한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가깝게 말하면 사랑이나 의리와 같은 무형의 가치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우주와 자연의 질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같은 것이다. 흔히 도교사상에서는 ‘도(道)’라고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높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조선은 서양의 과학적, 이성적 사고가 부족해 나라가 망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러니 김종영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는 동양의 사상에 뿌리를 두되, 서양의 과학적 사고를 종합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언어를 찾을 길은 없을까? 1955년 마흔이 된 김종영은 이런 메모를 남겼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과 어느 시대이고 생명을 잃지 않는 영원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후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는 ‘추상’을 연구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그 실마리를 따라가 보자. ‘작품 77-6′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의 얼굴이나 몸을 단순화시킨 것 같기도 하고, 흔한 꽃잎 같이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이것은 특정한 하나의 사물이라기보다, 인간이나 자연이 생장하는 원리 자체를 형상화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나의 중심원에서 생겨난 여러 작은 원들의 힘과 에너지 자체가 주제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이 작은 원들은 비슷하지만 각기 조금씩 다르게 자란다. 꽃잎의 모양이 모두 똑같지 않고,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다 같을 수 없듯이. 그러고 보면 자연의 모든 생장은 어떤 저항력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 하나를 두고, 이와 같은 상상을 끝도 없이 해볼 수 있다. 예술가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돌덩어리에 약간의 ‘가공(加工)’을 했을 뿐이지만, 관람자는 각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풍부한 해석을 덧붙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작가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한 작품에 무한한 내용을 ‘함축’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말하자면 ‘추상’의 원리이다. 김종영이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했던 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추상 개념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양에서 체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예만 해도 그렇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가 지닌 구조의 미학은 폴 세잔의 자연에 대한 구축적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김종영의 생각이었다. 그는 철저한 동양철학의 바탕 위에서 현대 추상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통용될 만한 좀 더 보편적인 궁극의 형상을 찾고 있었다.(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