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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무엇으로 작동하는가?-

선생께서 가신 지

몇 해가 지났다.

오랜만에  뵙는지라

설렘이 앞서는데

"누구세요~?"

하면서 몹시 어색해 하신다.

그러더니 이내 유행가 한 소절을 개사(改詞)해서 흥얼거린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찌 아느냐?"

미래인증건강신문 박기주 기자 |

-기억은 무엇으로 작동하는가?-

선생께서 가신 지

몇 해가 지났다.

오랜만에  뵙는지라

설렘이 앞서는데

"누구세요~?"

하면서 몹시 어색해 하신다.

그러더니 이내 유행가 한 소절을 개사(改詞)해서 흥얼거린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찌 아느냐?"

요양보호사의 얼굴에 순간 당황스러움이 스친다.

"항상 이러지는 않으세요.

가끔씩 이래요.

무슨 의미있는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알아 듣지 못하겠어요."

선생님은

우리 젊은날의 우상이었다.

'니체와 초인사상

고독에 이르는 병

역사와 혁명이란 무엇인가?'

선생께서

질풍노도와 같은 우리들에게

세상을 향해 눈뜨고  바른 길 가게해 주신

귀한 초석들이었다.

"할머니, 이름과 주소를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피해보상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할머니는 가족이 없다고 했다.

다친 곳도 별 것이 아니라 병원은 안가도 된다고 했다.

제발 이대로 나가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홀로되어 3남매를 보란듯이 키워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억척스럽게 견디고 견디면서 험한세상을 헤쳐  나왔다.

8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에게 남은것은

가슴을 까맣게 물들인 멍 자국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대인기피증과

폐지수거용

할머니를 닮은

낡은 손수레 하나가 전부였다.

"내 불쌍한 자식들을

나쁘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세상에 착하디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지구대 파출소 문을 나서는

허리굽은 할머니의 뒷모습에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대학동기인 녀석의 조부는

영남을 아우르던

거상(巨商)이었고

부친은 정계의 거물(巨物)이었다.

20여년 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요산 부근 자신의

거처에서 보자고 했다.

둘이서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대취大醉)했다.

세상 다 산 듯한 녀석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치고 있었다.

"너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너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50여년 전 내가 녀석에게 했어야 할 말을 내게 하고 있는것 같았다.

기억 속  아름다운 추억과 존재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한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