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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적자가 나도 좋으니 선박 수출의 물꼬를 트라”고 지시했다.

위원회의 첫 개가는 대만에 참치 어선 20척을 수출한 것이다. 신 회장은 67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 협력자금 614만달러를 대만에 지원해 국제입찰로 어선을 건조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맹반발에 부딪혔다. 담당 부처와 한국은행, 기업들은 물론 정치권에서 “가능성 없는 탁상공론이다, 제 정신이냐, 대통령을 현혹하지 말라”는 등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신 회장은 ‘세계 조선공업 변천과 한국 조선공업의 좌표 설정’이라는 한 장짜리 도표를 들고 박 대통령을 다시 찾았다. 세계 경제가 발전할수록 해운 물동량이 늘고, 그만큼 일본과 유럽의 조선 능력을 초과하는 수요가 발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신 회장은 “수많은 사람이 사사건건 반대하고 간섭하는 것에 굴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해주면 이 한 몸 불살라 우리나라 조선을 일으켜보겠다”고 호소했다. 그를 ‘신 국보’라 부르며 아꼈던 박 대통령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실이 조선·해운·수산·항만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인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창설이었다. 대통령이 9월 25일 검토 지시를 내린지 2주만에 정식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위원회의 첫 개가는 대만에 참치 어선 20척을 수출한 것이다. 신 회장은 67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 협력자금 614만달러를 대만에 지원해 국제입찰로 어선을 건조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적자가 나도 좋으니 선박 수출의 물꼬를 트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와 상공부, 대한조선공사 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 회장이 미국 체류 당시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68년 5월1일 타이베이에서 진행한 입찰에서 척당 30만4000달러의 최저가격을 써냈다. 서울에서 준비한 예정 가격(36만달러)을 썼다면 2위인 서독(34만2575달러)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입찰에는 성공했지만 납품까지는 먼 길이었다. 제대로 만들 수 있겠느냐는 대만 선주들의 불신과 외국산 기자재 도입의 어려움, 69년 8월1일 시작한 조선소의 총파업까지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기자재를 설치하면서 배를 조립하고, 4개 팀을 구성해 5척씩 건조하고 먼저 마치는 팀이 다른 팀에 합류하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돌관공사 끝에 12월30일 마지막 배를 인도할 수 있었다. 어선 수출이 성공한 덕에 수출 총액 7억281만달러를 기록하며 그 해 정부의 수출 목표(7억달러)를 간신히 달성할 수 있었다.

 

현재 바다에 떠다니는 5만t 이상 선박의 85% 이상이 ‘메이드 인 코리아’ 다. 지난해 전세계 발주량의 37%인 1559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를 수주했고,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는 압도적 세계 1위다.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로서 우뚝 서게된 밑거름은 바로 이 때 뿌려진 것이었다. 신 회장은 “대만 선박 수출은 단기적으로는 10억원의 적자를 낸 실속없는 장사였지만, 불가능에 도전해 성과를 거둔 투지와 경험, 기술은 향후 조선이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로 떠오르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