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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시간 만에 왜선 73척 중 59척 격침, 전사자 9000명 한산대첩

이순신이 쓴 '임진장초'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사기가 꺾여 도망치려 했다. 여러 장수와 군사와 관리들이 승기를 타고 분발해 앞다퉈 돌진하면서 총통과 화살을 마구 발사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아 적함을 불사르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거의 다 해버렸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시간 만에 왜선 73척 중 59척 격침, 전사자 9000명

한산대첩

돌아가신 지 42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역사 인물이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칼을 국보로 지정한다고 예고됐고, 정조 때 편찬된 이순신 관련 중요 자료인 '이충무공전서'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경남 거제시에선 20억원을 들여 만든 거북선을 폐기하기로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경남 통영에선 오는 8월 4~12일 제62회 '통영 한산대첩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40차례 해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대승이었던 한산대첩(한산도 대첩)은 어떤 해전이었을까?

견내량의 유인 작전이 성공하다

"적의 척후선(상대편의 형세를 정찰하기 위한 배) 두 척이 보입니다!"

1592년(선조 25년) 음력 7월 8일(양력 8월 14일), 이른 새벽 고성 당포를 출항한 조선 수군의 함대가 통영과 거제 사이 좁은 수로인 견내량이 보이는 바다에 이르렀다. 왜군 척후선이 곧 북쪽으로 달아났지만, 적 함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좁은 견내량은 조선군의 큰 판옥선이 좌초(배가 암초에 얹힘)할 가능성이 있어 해전을 벌이면 위험했고, 육지와 섬이 가까워 배에서 내린 적이 도주하기 쉬웠다.

이때 조선 수군을 이끌던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적을 넓은 바다로 유인해야 한다!" 조선군의 판옥선 5~6척이 견내량으로 진입한 뒤 후퇴하는 척하자,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함대가 이 유인 작전에 걸려들었다.

적선 59척 격파한 압도적 승리

7월 8일, 유인 작전에 걸려든 와키자카 함대를 맞은 조선 수군은 U자 형태로 적선을 포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배 한 척이 적선 한 척을 상대로 총통을 발사했다. 이 대형이 학 날개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학익진이라고 한다. 당시의 화포는 정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50m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총통과 화살로 일제히 공격해 적선을 격파하는 방법을 썼다.

이순신이 쓴 '임진장초'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사기가 꺾여 도망치려 했다. 여러 장수와 군사와 관리들이 승기를 타고 분발해 앞다퉈 돌진하면서 총통과 화살을 마구 발사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아 적함을 불사르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거의 다 해버렸다."

조선군의 압승이었다. 와키자카 함대 73척 중 59척이 격침당했다. 왜군 전사자는 약 9000명으로 추정된다. 조선 수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실제 해전에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한다. '한산대첩을 실제 일어난 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별로 재미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