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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는 젊은 시절 글쓰기 훈련을 많이 했는데,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서유구는 젊은 시절 글쓰기 훈련을 많이 했는데,

18세부터 쓴 글쓰기 결과물을 25세(1788)에 『풍석고협집楓石鼓篋集』으로 엮었다.

 

이 문집은 당대 명망 있는 문사인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이의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세 선배에게서 글마다 비평문을 받기도 했다.

 

한문학자 강명관의 평에 따르면 20대 청년의 글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원숙한 필치로 썼다.


1790년에 정조가 친히 참석한 유생들의 시험에서 최고점(純通, 순통)을 받아 과거에 곧장 응시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를 직부전시(直赴殿試)라 하는데, 직부전시를 명 받았다면 급제는 확정적이다.

이렇게 치른 서유구의 증광시(增廣試,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과거) 성적은

46명 중 24위(병과 14위)로, 중간 정도의 순위를 보여주었다.

 

서유구는 과거에 급제한 해(1790)에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