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부(富)의 중심 34세이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이후 50년 동안 요직(要職)을 맡았다. 육군 소장 예편→대한중석 사장(3년)→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25년)·명예회장→민정당 대표·민자당 최고위원·자민련 총재·4선(選) 국회의원→국무총리….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인생’의 전형이다. 흔히 부패 인사, 독재자 같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씨는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이다.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2011년 12월 17일서울 현충원 영결식장 ). 한 사람의 일생이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로까지 칭송받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다. 박태준 회장(이하 청암으로 호칭)에게 어떤 남다른 측면이 있는 걸까? 통상대신(通商 大臣) 시절 포항제철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종업원들이 너 나 없이 마음으로부터 박태준을 따르고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아~!!" 마지막 애국자 박태준! 감동의 물결이 출렁입니다 요즘 정치인과 기업인들 그리고 젊은 자녀들 꼬~오 필독! 강추~~ ♥️대한민국 마지막 애국자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 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 초중고교를 다녔고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중퇴·귀국했다. 육사 6기로 임관한 그는 6.25 전쟁 당시 경기 포천 지역 1연대 중대장이었다. 군에서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육군대학 수석 졸업 후 최연소 육사 교무처장, 1군 참모장 등을 지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베스트셀러신간보통장군 전인범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의 이야기(8) 창군 초기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장성 중 가장 많은 훈장을 수훈한 탁월한 군인이라는 사실보다도 어쩌면 그는 자신이 부하들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더욱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이 책은 부하와 미군에게 경애받던 장군, 전인범의 발자취를 좆는다. 외교관으로 일하시던 어머니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도 군에 대한 꿈을 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청운의 꿈을 안고 군문에 들어섰으나 좌절을 겪어야 했던 초급 장교 때의 이야기, 아웅 산 테러 사건에서 상관을 구하며 영웅이 되었지만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현실의 벽이나 답답한 현실에 좌절하고 고민하던 이야기도 가감 없이 담겼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조국에 대한 헌신, 가족과 부하들에 대한 애정, 동물과 취미를 사랑하는 소탈함과 함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진심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베스트셀러신간보통장군 전인범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의 이야기(7) 부하들의 경애를 받는 군인이 되는 일은 능력 있는 군인이 되기보다도 어렵다. 그저 무른 사람이어서도 안 되고, 엄하고 가열차기만 해서도 안 된다. 병사들은 누가 자신들을 진정으로 아끼는지, 또 누가 자신들을 허투루 여기는지 쉬이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전인범 장군은 솔선수범과 원칙에 입각한 강직함, 그리고 진정으로 부하들을 위하는 리더십으로 그 어렵다는 존경과 사랑을 얻었다. 그의 지휘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전인범 장군의 일화를 회고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기자 |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가 방탄소년단(BTS) 진을 새로운 글로벌 브랜드 앰버서더로 선정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데뷔 이후 수차례 빌보드 뮤직 어워드 '탑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하고,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석권하는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진은 2022년 10월, 첫 솔로 싱글 'The Astronaut'을 발표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다. 진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의 미학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표현해 왔다. 사바토 데 사르노 또한 아티스트로서의 진뿐만 아니라 그의 따뜻한 마음과 고유한 스타일에 깊은 애정을 전하며,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키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앞으로의 협업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진은 향후 구찌 글로벌 브랜드 앰버서더로서 하우스의 혁신적인 정신을 알리고 공유할 다양한 이니셔티브와 이벤트에 참여할 예정이다. [출처=오길비 구찌팀]
미래인증건강신문 박기주 기자 | -하늘이 내려 준 은총과 축복- 인간은 자신들의 흔적과 궤적을 역사(歷史)로 남기고 하늘은 세상을 향한 은총을 은밀하게 역사(役事)하면서 풍요롭게 성취한다. 열강들이 제국을 위한 영토침탈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이 땅은 사람(人)으로 예비되고 있었다. 일제 식민통치와 공산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오늘을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흔히들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을 하지만 기적도 나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하늘은 가진것 없고 빼앗기고 상처받은 이 땅 이 민족에게 혜안을 가진 선각자와 경세가들을 내려 보내 은애(隱愛)위에 위로를 더했던 것이다. 35살의 청년 이승만이 우국충정 하나를 의지삼아 독립을 염원하며 분투하던 바로 그 해 1910년 2월, 나라는 외교권이 박탈되고 반도의 끝자락 경상도 땅에서는 이병철이 태어난다. 그리고 5년 후 1915년 11월에 강원도 외진 산골 통천에서 정주영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암울한 세상을 향해 울음소리를 낸다. 또 다시 2년 후 1917년 11월 박정희라는 작은 거인이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 건국 대통령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베스트셀러신간보통장군 전인범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군인의 이야기(6) 사단장으로 재직하며 전역하는 병사들에게 경례로 배웅하던 그는 병사들의 보급품을 위해 상급자 앞에서 입에 슬리퍼를 물었다. 미군에게 강한 신뢰를 얻어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다지는 데 일조하던 그는 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는 수많은 개혁 조치를 수행하여 ‘영원한 특전사령관’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제1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35년간 몸담았던 군문을 나섰지만, 이후로도 한미동맹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며 대한민국을 위한 헌신을 이어 가고 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이야기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이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기업가는 화신그룹 창업자 박흥식(1903~1994)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며 1918년 평남 진남포에서 쌀장사로 출발해 1926년 서울에서 선일지물을 설립, 1932년 국내 최대의 지물상으로 키웠다. 1931년에는 서울 종로2가의 화신상회(백화점)를 인수하고, 1934년 국내 최초로 연쇄점사업을 전개해 굴지의 화신그룹을 세웠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이들 중 발군의 실력으로 대기업집단을 형성한 사례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고 경성방직, [동아일보], 고려대학교 등을 설립한 김성수(1891~1955)와 친동생 김연수(1896~1979)다. 김성수는 호남 대지주의 후예로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1919년 토착 제조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큰 공칭자본 100만원인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동생 김연수는 1924년 농장기업인 삼수사(삼양그룹의 모기업)를 설립해 경영하는 등 해방 무렵 경성방직은 굴지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부산 출신 윤상은(尹相殷, 1887~1984)도 민족기업가였다. ‘조선 철도는 조선인 손으로’라는 신념으로 국내 철도건설에 진력했던 박기종(朴琪淙, 1839~1907)의 사위이며, 1912년 부산에 민족은행인 구포은행을 설립했다. 구포은행은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 지방은행이었지만 일본계 경남은행에 인수됐다. 윤상은은 낙동강 하구를 간척해 대지주로 변신했을 뿐 아니라 경남은행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또 그는 1919년 기미육영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 제공은 물론 교육사업도 전개했지만 일제의 탄압과 감시로 해방 무렵까지 고향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