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풍석문화재단 설립취지 풍석문화재단은 "풍석 서유구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저술에 기반한 전통문화콘텐츠를 현대에 되살려 창조적으로 진흥시킴으로써 한국 학술 및 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재단 정관 제2조) "으로 2015년 4월 28일 설립되었습니다. 풍석문화재단에서 추진 예정인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풍석 서유구 선생의 사상 및 업적 홍보 2. 풍석 서유구 선생의 저술 번역 및 출판 지원 3. 풍석 서유구 선생 기념관 건립 4. 풍석 서유구 선생이 저술한 [임원경제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 5. [임원경제지] 기반 전통실용문화콘텐츠의 연구 보급 확산 6. [임원경제지] 기반 전통실용지식 국제협력 및 남북협력(재단 정관 제 4조) 풍석문화재단은 풍석 서유구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고 재단의 설립취지에 뜻을 같이 하시는 분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음식점 소개 풍석원(楓石園/02-723-9978/서울 종로구 인사동 16길 3-7) 풍석원은 2012년 11월 씨앗을 뿌리는 사람 장익순 사장님이 풍석 서유구 선생과 임원경제지를 널리 알리고 임원경제지 번역출판을 후원하기 위해서 인사동 문화사랑방을 지향하여 개원하였습니다. 음식에서 ‘깨끗한 맛’이란 무엇일까. 짜지 않은 것, 양념이 많지 않은 것, 느끼하지 않은 것…. 이런 맛일까. 글쎄 나는 깨끗한 맛을 ‘먹은 뒤 다른 뒤끝이 없는 맛’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요사이 각종 조미료와 향신료에 뒤범벅이 된 음식을 먹고 나면 한참 지난 뒤에도 입안의 이물감에 시달리곤 한다. 요사이 손쉽게 맛을 내려하고, 재료의 부실함을 감추기 위해 음식이 점점 조미료와 향신료의 범벅이 되고 만다. 그렇다보니 밖에서 사먹는 음식 중에 깨끗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드물다. 그런 세태와는 달리 깨끗한 맛을 내려는 음식점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선배가 저녁을 내겠다고 하여 찾아간 인사동 골목 안에 있는 이 집은 인사동에 있는 여느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한옥을 개조하여 음식점을 열었다. 인사동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많은 음식점이 있다. 그런 음식점 중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정조의 핵심 측근으로 정조와 함께 조선 개혁의 꿈을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른 넷 젊은 나이에 정조에 의해 전라도 순창군수로 임명되면서, 당시 백성의 고단한 현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본격적으로 조선 농업 현실을 생산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 선생은 1764(영조 40)년 11월 10일 아버지 서호수와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나, 1845(헌종 11)년 향년 82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사단법인 임원경제연구소는 고전번역 전문기관입니다. 2003년부터 임원경제지 번역을 시작해 온 젊은 학인들 약 40여명이 2008년 3월 정식으로 사단법인을 결성했습니다. 2009년 임원경제지 16지중 첫 지(志)인 『본리지』 3권을 출간한 이후, 현재 완간을 위한 마무리 작업(교열과 교감 등)중에 있습니다. 2012년 6월에는 『임원경제지-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출판사 씨앗을뿌리는사람)을 출간하였습니다. 16지의 서문과 목차, 내용소개, 인용문헌 분석, 서유구 생애, 소장본 현황, 번역과정 등의 정보가 1632쪽에 집약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2016년 『섬용지』를 시작으로 2017년 『유예지』를 포함한 8지, 2018년 『전공지』를 포함한 6지, 2019년 『인제지』를 마지막으로 16지 61권 전권을 4년에 걸쳐 차례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덕상 기자 | [삶과 추억] 쌍용그룹 한때 재계 6위 이끈 경영인 중앙일보 고석현 기자 보이스카우트기를 전달받고 있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8세. 27일 김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는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빈소엔 김 전 회장 재임 당시 쌍용그룹 계열사 임원진과 그룹 원로가 찾아 고인을 기렸다. 재계에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국제빙상경기연맹 회장) 부부 등이 이날 조문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정대철 전 의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재계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박진 외교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정치·문화·체육계 인사가 보낸 근조 화환과 근조기가 빈소 앞을 메웠다. 스웨덴 국왕의 조화도 있었는데, 고인의 측근은 “김 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801년(순조 1년)은 다산에게 혹독한 해였다. 정조 승하 후 고향집 마현(마재마을, 남양주시 능내리)으로 돌아온 다산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노론의 모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월 28일 한양으로 가 머문다. 예상대로 2월 7일 조정에서 탄핵 논의가 일어나고, 이튿날 새벽에 다산은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2월 28일 경상도 장기현, 지금의 경북 포항으로 유배 갔다가 7개월 여 만에 천주교 신자이자 다산의 조카사위 황사영이 쓴 백서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 한양으로 압송된다. 이후 한양에서 800리나 떨어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신유옥사’와 ‘신유박해’가 일어난 해 다산의 이야기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의 저자이자 다산을 연구하는 문학박사 김형섭 남양주시다산정약용팀장은 “여러 기록과 정황상 다산은 그해 참담한 심경으로 한강을 최소 네 번 건넜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께에서 나고 자란 다산에게 물길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문이었다. 그중 ‘습수(濕水)’라 부른 남한강은 기나 긴 유배길에 오르며 이별의 회한을 시로 풀어낸 물길이자 해배(귀양에서 돌아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신동식. 1932년생.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비서관, 초대 경제수석 비서관,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표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해사기술 회장, 카본코리아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김형섭 팀장은 “해배 후 다시 되짚어 간 남한강은 이별시를 남겼던 유배길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정서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마치 생(生)과 다시 재회한 사람처럼 ‘귀전시초’에는 지나치며 본 파사성이나 신륵사도 자신만의 애정 어린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해 놓았다”고 말했다. 다산의 남한강 기행은 몇 년 뒤 이어진 북한강 기행까지 아우르며 인문 역사지리서 ‘아방강역고’에 ‘한강 물길’의 방점을 찍는 이정표가 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맹반발에 부딪혔다. 담당 부처와 한국은행, 기업들은 물론 정치권에서 “가능성 없는 탁상공론이다, 제 정신이냐, 대통령을 현혹하지 말라”는 등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신 회장은 ‘세계 조선공업 변천과 한국 조선공업의 좌표 설정’이라는 한 장짜리 도표를 들고 박 대통령을 다시 찾았다. 세계 경제가 발전할수록 해운 물동량이 늘고, 그만큼 일본과 유럽의 조선 능력을 초과하는 수요가 발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신 회장은 “수많은 사람이 사사건건 반대하고 간섭하는 것에 굴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해주면 이 한 몸 불살라 우리나라 조선을 일으켜보겠다”고 호소했다. 그를 ‘신 국보’라 부르며 아꼈던 박 대통령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실이 조선·해운·수산·항만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인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창설이었다. 대통령이 9월 25일 검토 지시를 내린지 2주만에 정식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위원회의 첫 개가는 대만에 참치 어선 20척을 수출한 것이다. 신 회장은 67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 협력자금 614만달러를 대만에 지원해 국제입찰로 어선을 건조한다는 정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