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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퇴직금 ‘0원’... 73세에 전셋살이 “청암의 도덕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분의 리더십 근간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었다”(황경로·포스코 2대 회장)는 증언 그대로이다.
인사 청탁과 금품 주고받기가 난무하던 1956년 11월, 그는 세칭 ‘노른자위’ 자리인 국방부 인사과장이 됐다.
그러나 청암은 유혹 및 압력과 싸우다가 10여개월만에 25사단 참모장 근무를 자원해 갔다.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되겠냐”고 하자, 청암은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주식·퇴직금 ‘0원’...


73세에 전셋살이
“청암의 도덕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분의 리더십 근간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었다”(황경로·포스코 2대 회장)는 증언 그대로이다.
인사 청탁과 금품 주고받기가 난무하던 1956년 11월, 그는 세칭 ‘노른자위’ 자리인 국방부 인사과장이 됐다.
그러나 청암은 유혹 및 압력과 싸우다가 10여개월만에 25사단 참모장 근무를 자원해 갔다.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되겠냐”고 하자, 청암은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다.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준 하사금을 합쳐 서울 북아현동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8년 새 15번 전셋집을 전전했다. 38년간 살던 집을 2000년에 팔아 생긴 돈 14억 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73세에
다시 전세살이를 했다.

그가 사후에 남긴 재산은
전무(全無)했고, 말년에
생활비와 병원비는 자녀
5명(4녀 1남)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청암을 다룬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한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
였던 포항제철 25년 동안
박태준은 한 푼의 비자금도 만들지 않았다.
이는 누구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20세기 후반 한국사에 길이 기록될 업적이다.
이거야말로 박태준의 이름을 포철 용광로만큼이나 칭송(稱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