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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堂 최남선은 왜 담양 지실 마을을 찾았을까

육당 최남선이 ‘길지’로 꼽은 전남 담양군 지실마을 입구 간판석. 송강 정철이 살았던 마을로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아무튼, 주말] 六堂 최남선은 왜 담양 지실 마을을 찾았을까
[김두규의 國運風水]
낙향한 선비들이 숨 고르던 담양 亭子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육당 최남선이 ‘길지’로 꼽은 전남 담양군 지실마을 입구 간판석. 송강 정철이 살았던 마을로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이다. / 김두규 교수 제공

관광은 “관국지광(觀國之光)”이 출전이다(‘주역’). “그 지방[國]의 문화[光]를 본다[觀]”는 뜻으로 군자의 일이다. 지방의 역사·문화·정신을 이해하여 세계관을 넓힘이다. 약 100년 전인 1925년, 육당 최남선은 50여 일 국토 여행을 한다.

“조선의 국토는 산하 그대로 조선의 역사며 철학이며 시며 정신입니다. 문자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최남선, ‘심춘순례’)

필자가 주목한 것은 육당의 담양에 대한 관심이다. 담양은 필자가 사는 순창과 인접하기에 자주 가곤 한다. 육당은 수많은 마을 가운데 ‘지실[지곡·芝谷]’ 마을을 찾는다.

“백일홍 나무에 에워싸인 식영정을 지나, 지금까지 송강(정철) 자손만으로 한 마을을 이뤄 사는 지실 정촌(鄭村)을 돌아 소쇄원을 찾았다. 담양(창평)의 산수지(山水地·풍수상 길지)는 지실이다.”(최남선, ‘심춘순례’)

최남선의 동선은 ‘송강정→식영정→지실→소쇄원’이었다. 왜 이곳을 길게 묘사하였을까? 육당이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담양의 정자들은 건축주가 분명하다. 식영정(김성원)·송강정(정철)·면앙정(송순)·환벽당(김윤제)·소쇄원(양산보)…. 당쟁·사화·옥사 등에서 패하여 돌아온 뒤 정자를 짓고 그 원망과 울분, 그리고 임금에 대한 하소연을 노래한다(가사문학). 

담양의 정자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다. 순창 출신이나 담양(창평)을 근거지로 자신을 키웠던 김병로(초대 대법원장)의 ‘수업시대’가 이를 방증한다. 가인은 이곳에서 고정주(고재욱 동아일보 사장 조부)·인촌 김성수(고정주 사위)·송진우·백관수 등과 교유한다. 또 지실 마을의 정교원 딸과 결혼한다(김학준, ‘가인 김병로 평전’). 한민당의 중심 세력이다.

육당이 담양의 길지[“山水地”]로 칭찬한 지실 마을은 지금도 명당일까? 국내 최고 법무법인 ‘김앤장’의 정경택 대표변호사와 정성택 전남대 총장 형제도 지실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