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사실 유교를 떠나서, 원래 식인 행위는 현대에 비해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으며 인권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던 고대 중국에서도 분명한 비정상적 행위였다.
물론 전근대시절에는 영양상태나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긴 전쟁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종종 나오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나오는 행위였지, 고대인이라고 해서 "먹을 거 없으면 사람 좀 잡아먹을 수 있지"란 식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설령 극단적 상황에서 나온 식인이라도 두고두고 지탄을 받는 행동이었다.[48]
9.3. 자손 대대로 이어진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편집]
부부관계는 본인은 물론 후대에까지 별로 좋지 않았던 듯하다. 공자, 공자의 아들, 공자의 손자인 자사까지 3대가 이혼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예기의 단궁편의 다음 구절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백어의 어미가 죽었는데, 1년이 넘어도 여전히 곡을 했다. 선생님이 들으시고 "누가 곡을 하는가?"라고 물으셨다. 문인들이 "리입니다."라고 하니 "에휴. 심하네…."라고 하셨다. 백어가 이를 듣고 그만두었다.[49]
→ 백어는 공자의 아들을 말하는 것으로, 리(鯉)가 이름이다. 즉, 아들이 엄마가 죽었다고 1년 동안 곡을 하자 그것이 심하다고 언급한 것.
자사의 어미가 위나라에서 죽어서, 자사에게 그 소식을 알리자 자사가 사당에서 곡을 했다. 문인이 도착해서 말했다. “서씨의 어미가 죽었는데 어째서 공씨의 사당에서 곡을 합니까?” 자사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면서 그리고는 다른 방에서 곡을 했다.[50]
→ 자사는 공자의 손자로, 백어의 아들이다. 서씨의 어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백어가 이혼하였고, 이혼한 전처는 서씨와 재혼했다는 의미이다. 즉, 왜 더 이상 이 집 사람이 아닌 엄마 때문에 공씨 사당에서 우느냐고 한 것.
자상의 어미가 죽어도 상을 치르지 않았다. 문인들이 자사에게 물었다. "옛날에 아버님께서는 쫓겨나신 어머니의 상을 치르신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자사가 답했다. "있었지." "헌데 선생님께서는 왜 흰둥이한테는 상을 못 치루게 하십니까?" 자사가 말했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께선 도를 잃으시는 법이 없으셨네.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도에 견주어 보시고 그 예를 높일만 하면 높이고, 낮출 만하면 낮추셨지.(내 아버지께서는 능히 그리하셨으나) 내가 (도를 잘 헤아리지 못 하는데) 어찌 그처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 생각하기로는) 내 마누라가 흰둥이 엄마지, 내 마누라가 아닌 사람은 흰둥이 엄마가 아닐세!(…) 이리하여 공씨네 집에서는 이혼한 어머니의 상을 치르지 않는 것이 자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51]
→ 자상은 공자의 증손자로, 자사의 자식이다. 흰둥이는 자상을 말하는 것. 즉, 자신의 아내가 죽어도 상을 치루지 않자 예전에 이혼한 어머니의 상을 치룬 적이 있는 자사가 왜 자기 자식에겐 그렇게 못 하게 하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는 것. 돌아오는 대답인 즉슨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도에 견주어 보시고 능히 적절한 예식을 취할 능력이 되셨으나, 나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 마누라가 곧 자상이 엄마지, 내 마누라가 아닌 사람은 자상이 엄마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