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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와 조각 사이

김종영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글씨 ‘근도핵예(根道核藝)’. 도는 뿌리, 예는 열매라는 뜻이다. /김종영미술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서예와 조각 사이
김종영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글씨 ‘근도핵예(根道核藝)’. 도는 뿌리, 예는 열매라는 뜻이다. /김종영미술관

1930년 15살이 되자, 김종영은 상경해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그리고 재학 중이던 1932년 전조선남녀학생전람회 서예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다섯 살 때부터 익힌 그의 서예 실력을 따라올 자가 없었던 모양이다. 안진경의 ‘원정비’를 따라 쓴 김종영의 정갈한 글씨는 신문에도 실렸다. 중국 당나라 현종이 출사를 종용해도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던 이현정의 삶을 기록한 글이었다. 내용이 어쩐지 김종영의 부친과 선조들 이야기 같다. 세속의 이해타산을 떠나, 소탈한 삶을 자처했던 도인(道人)의 이야기다.

휘문고보에는 장발(1901~2001)이 미술 교사로 있었다. 장발은 이미 1920년대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실기와 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1세대 서양화가였다. 이탈리아에 직접 가서 종교화를 연구한 그는 한국에서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체감한 인물이었다. 장발은 천주교인으로 종교미술에 심취했던 터라, 한국에도 화가뿐 아니라 조각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통감했다. 외국 성당에 나가 보면, 건물 전체가 조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나. 그래서 장발은 휘문고보 학생 중 유난히 뛰어났던 김종영에게 조각을 배워오라고 독려했다. 1936년 김종영은 일본 도쿄미술학교 조소과에 입학해서, 미술해부학을 비롯한 인체조각의 과학적 기초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러니까 김종영은 뿌리 깊은 동양철학의 형이상학을 연구한 그의 아버지 김기호와 당대 가장 최신 서양미술을 받아들인 장발이라는 두 스승 밑에서 성장했다. 그에게서 동양과 서양, 전통과 미래가 교차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다(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