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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공존 운운하는 사람들은 미친사람들이다. ▲장진호 전투 중 이동하는 미 해병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뉴스 속의 한국사] "후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진격한 것
장진호(長津湖) 전투

▲장진호 전투 중 이동하는 미 해병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미 의회 연설에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長津湖) 전투에서 중공군 12만명의 인해(人海)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어요.

'인해전술'이라는 것은 우수한 무기가 아니라 많은 병력을 투입해 적을 압도하려는 전술로, 6·25전쟁(1950~1953) 당시 중공군(중국 공산군)이 실제로 썼어요.

 

윤 대통령 발언에 중국 외교부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은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고 반발했습니다.

'항미원조 전쟁'이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북한)을 도왔다'는 뜻으로, 중국이 자국 입장에서 6·25전쟁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장진호 전투는 과연 어떤 전투였을까요?

개마고원으로 밀려든 중공군 12만명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북쪽이 남쪽을 침범함)으로 6·25전쟁이 시작됐어요.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반격해 10월 19일 평양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이 북한 편을 들고 참전하며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죠.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중공군 침공으로 청천강으로 물러납니다.

 

당시 동부 전선의 국군과 유엔군은 세 갈래 방향으로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원산을 점령하고 두만강 방향으로 진군한 국군 1군단, 부전호를 지나 압록강 유역 혜산진으로 진격한 미군 7사단,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해 개마고원의 장진호 방향으로 진출한 미군 해병대 1사단이었죠.

 

11월 19일,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서북쪽 유담리까지 진군했습니다.

겨울에 대비해 장진호 남쪽 하갈우리에 사령부를 두고 활주로 공사를 하는 등 보급로를 확보하고 있을 때 중공군 12만명이 장진호 일대로 몰려들었습니다.

미 해병대를 제압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진출한 국군과 유엔군을 함께 차단하려는 속셈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