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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恒의 생애와 사상

金恒의  성은  金氏요,본관은  光山이며,이름은  恒(초명은  在樂,후명은  在一) 이고,字는  道心이며,號는  一夫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 金恒의 생애와 사상
1)     金恒의 생애와 남학
金恒의  성은  金氏요,본관은  光山이며,이름은  恒(초명은  在樂,후명은  在一) 이고,字는  道心이며,號는  一夫이다.전  忠淸道  黃城郡  茅谷面  談谷里  당골 (현  論山郡  陽村面  南山里)뒤의  五道山  남쪽  기슭  沈洞의  대밭이  출생지이 다.12) 이곳에서  서기  1826년(純祖  26)丙戌년  己亥月(10월)丙子日(28일)己亥時에  탄생하여  光武  2년  戊戌  甲子月  甲戌日(1月  25日)戊辰時에  黃城鄕  茶現(현,論山郡  夫赤面  夫皇里)에서  73세에  작고하였다.


1861년에  이운규가  金恒에게  “後日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首만  넣어주소”하고  내어  준  것이  바로  저  유명한  “觀淡은  莫如水 요  好德은  宣行人을  影動天心月하니  勸君尋此眞  하소”라는  글이다.13) 연담의 본명은  守曾,본관은  전주,潭陽君(世宗大王의  아들)의  13세  손으로  純祖  3년甲子(1804)년에  출생,文參判을  지냈고,흥선군  李昰應과  친밀한  사이였으며趙大妃와도  인척관계가  있었다  한다.그의  학통은  薑山  李書九의  뒤를  이어 천문․역산․시문․역학에  능통하고  知人之鑑이  있었다고  한다.


金恒의  수행정진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하나는  㾷書傳㾸의  정독과  다독이 요,다른  하나는  詠歌와  舞蹈로  인한  신명의  개발이다.그  결과가  <正易八卦圖> 출현과  第三易인  㾷正易㾸의  저술로  나타났던  것이다.金恒은  조선조  후기 에  태어나  평생  재야에  몸담았지만,자신만의  독특하고  의미  깊은  사상체계를 수립했다.그는  正易을  완성하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先後天論을 비롯하여  河圖洛書論,金火交易論,日月開闢論,度數論  등을  통합하고,더  나아 가 우주의 변화를 괘도의 변천에 대응시키고 그 결과를 正易八卦圖로 귀결시 켰다.그에  의하면  주역   說卦傳  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正易八卦圖>의  논리적  근거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神이란 것은 만물을 미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과 불이 서로 건져 주고,우레와  바람이  서로  거슬리지  않고,산과  못이  기운을  통한  연후에야 변화할  수  있어  이미  만물을  다  이루어  놓는다.

 

이 내용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卦圖의 질서와 一毫 差錯이 없이 부합함을 발견하고  再從侄  金國鉉(당  28세)으로  하여금  그리게  한  것이  <文王卦圖>의 뒤를  이어  나타난  第三卦圖인  <正易八卦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