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용광로 같은 애국심과 도덕성.
이는 청암이 자신의
좌우명(座右銘), 즉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히 조국에’에 철저해 탁월한 업무 능력과 강력한 도덕성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평가이다.
그는 실제로 1964년 12월 국영기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맡은지 1년 만에
만년적자(萬年赤字)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보통 4~5년 걸리는 종합제철소 건설 작업을 제철소 구경조차 한적 없는 38명과 함께 착공 3년 3개월만에 완공하여 마쳤다.
조업 첫 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를 냈다
가동후 50년 가까이 적자였던 일본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기적’적인 일이다.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사에서 제철소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다.
청암은 제철소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하루 24시간 작업을 지시해 놓고 자신도 매일 3~4시간 잠 자며 현장을 챙겼다.
1968년 포항제철 출범부터 1992년 광양제철소 2기 완공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포항 효자동 사택과 회사에서 지내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불렸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다.
피와 땀을 쏟아 창업하고
성장시킨 포스코에서 25년 만에 물러날 때, 그는 한 주의 공로주(功勞株)는커녕 퇴직금 1원도 거부했다. 1988년 포항제철 임직원
1만9419명에게 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
사주(社株)로 배정했을 때도 같았다.
명예회장으로 복귀한 뒤
“노후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스톡옵션을 받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 그는
“포항제철은 선조(先祖)의 피로 세운 회사이다.
공적인 일을 할때 사욕(私慾)을 갖지 말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