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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이 하생하여 세 번의 설법회를 열어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하생경』의 그림. 미륵하생지도 · 용화회도.

현재 알려진 미륵하생경변상도는 3점으로 1294년 작 일본 묘만지(妙滿寺), 1350년 작 신노인(親王院), 고려후기 치온인(知恩院) 소장품이 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미륵불이 하생하여 세 번의 설법회를 열어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하생경』의 그림. 미륵하생지도 · 용화회도.

 

현재 알려진 미륵하생경변상도는 3점으로 1294년 작 일본 묘만지(妙滿寺), 
1350년 작 신노인(親王院), 고려후기 치온인(知恩院) 소장품이 있다. 


묘만지 작품에는 
최상단에 ‘미륵여래하생지도(彌勒如來下生之圖)’, 
하단 화기에 ‘용화회도(龍華會圖)’라는 화제(畵題)가 있어 
이 불화가 미륵의 하생주1과 용화회주2를 주제로 함을 밝혔다.

 

미륵경전에서 용화회는 본래 미륵불이 하생하여 
용화수주3 아래에서 여는 법회를 의미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미륵불에 대한 불교의식도 용화회라 일컬었다. 

 

고려시대에는 충렬왕이 1301년과 1302년에 광명사(廣明寺)에서 
친히 용화회를 열었다는 기록 등 
용화회 개최에 대한 기록이 다수 남아 있어, 
융성했던 법상종주4과 미륵신앙이 용화회 개최 및 미륵하생경변상도 
제작의 배경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알려진 미륵하생경변상도 3점은 비슷한 화면 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지온인 본 및 신노인 본은 서로 거의 같은 구성이고, 
1294년 작 묘만지본은 약간 다르다.

 

그림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을 성불시키기 위하여 
설법하는 장면을 그렸고, 
하단에는 『미륵하생경』의 내용에 의거하여 
미륵이 하생한 곳으로 알려진 계두성(鷄頭城)의 여러 모습을 묘사하였다. 

 

상부의 중앙에는 미륵불이 협시보살을 비롯한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앉아 있다. 
미륵불은 의자에 앉은 의좌상(倚坐像)의 자세이며 
주위에 제석천과 범천, 십대제자, 십이신장이 협시하였다.

 

미륵불의 머리 위로는 미륵이 성불하기 이전에 거주하던 
도솔천궁의 화려하고도 장엄한 모습과 
그 좌우에 5구씩 부처와 주악천녀가 그렸고, 
미륵불의 아래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주5과 
왕비가 미륵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여 꿇어앉아 삭발하는 장면을 그렸다.

 

하단에는 미륵이 하생한 계두성의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모습과 말, 코끼리가 끄는 수레, 
전륜성왕 및 여러 대신들의 모습을 그렸다. 


제일 아래 부분에는 향로가 놓인 탁자를 중심으로 
귀인(貴人)과 시녀가 둘러서 있고, 
그 좌우로는 농부가 밭갈이하는 장면, 
벼를 베고 도리깨로 타작하여 낟알을 주워 담는 추수 장면, 
미륵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장자(長者)가 
바위굴 속에 앉아 있는 장면, 금은보화를 쓸어 담는 장면 등이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미륵정토의 내용을 도상화 한 것이다.

1350년에 제작된 일본 신노인 소장품의 좌측 아래 모서리에는 
붉은 바탕에 금니(金泥)로 화기가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미륵신앙을 중심으로 한 신앙결사(信仰結社)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은 정치․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고려 후기에 
민간에서 미륵불에게 향을 공양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향목(香木)을 매향(埋香)주6하는 풍습과 더불어 
미륵하생신앙의 유행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