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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추사, 누가 뭐라 해도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차츰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다산과 추사, 누가 뭐라 해도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귀양 살며 얼마나 전심치지하여 학문연구에 몰두했었던가를 증언해주는 제자 황상이 있었다. 황상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산이 학문 연구할 때의 일화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 선생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방바닥에 앉아 공부만 했기 때문에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려 큰 고통을 겪었다”라고 말했다. ‘과골삼천(踝骨三穿)’이라는 사자성어가 그렇게 해서 나왔다. 의자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 바닥에 발을 밀착해 앉아 있노라면 복숭아뼈가 닳아져, 구멍이 뚫릴 정도로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증언이었다.

추사의 평생 친구는 이재 권돈인이었다.  추사문집을 읽다 보면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수십 통이 있다. 어떤 편지에 “내 글씨에 대해서야 별로 이야기할 것은 없지만, 다만 기억해주실 일은 있네. 내가 붓글씨를 쓰려고 벼루에 먹을 가느라 10개 정도의 벼루가 가운데가 뚫렸고 모지랑이 붓이 다 닳아 털이 없어진 붓이 1000개는 되었네”라고 말해 ‘마천십연(磨穿十硏) 독진천호(禿盡千毫)’라는 유명한 글귀가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재라는 사실만으로 최고의 지도자가 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된다는 사실은 이제 믿을 수 없다. 다산과 추사가 그 정도의 업적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노력과 땀을 흘렸고 열성과 정성을 바쳤던가를 기억해야 한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