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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11월 고국을 떠난 지 19년 만에 귀국, 1978년 눈을 감았다.

격전 6일 만에 사단병력 약 1만 명 중 사단장 이하 이경채 등 2백 명 정도만 탈출, 생환하였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이경채는 1937년 10월 중국 육군 제11사(사단장 柳際明 중장)에 임시 배속되었고,

상해 근처 가정현(嘉定縣) 외강 부근에서 전개된 중일전쟁에서

최고의 전쟁으로 기록된 크리크 작전에 참전하였다.

 

11사단은 일본 육전대와 이중 삼중 상호 포위 작전을 전개하였지만,

격전 6일 만에 사단병력 약 1만 명 중 사단장 이하 이경채 등 2백 명 정도만 탈출, 생환하였다.

 

1938년 1월 이경채는 15집단군사령부로 복귀하여 줄곧 중국군 소속으로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이경채는 더 이상 중국군에 머물 이유가 없었고 판단하였다.

 

그는 중국군 중령으로 근무하던 중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11월 고국을 떠난 지 19년 만에 귀국, 1978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