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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경채는 몇몇 친우들과의 독서회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924년 동맹휴학은 일제 식민지 교육 현실에 저항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뒤 1928년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중요한 경험으로 작용하였다. 당시 1학년이었던 이경채는 식민지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싹틔우게 되었다.

 

이경채는 1926년 일어난 6・10만세운동을 통해 사회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민족주의 의식을 가진 한국인 교사에게 민족교육을 받아 항일의식을 키워나갔다.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청년, 사상단체의 각종 강연회 등을 통해서도 민족의식을 고취해 나갔다.

 

1927년 여름, 이경채는 4학년 재학 당시 동리 친구인 박병하(朴邴夏)・윤해병(尹海炳)과 동교생 양태성(梁泰成)・유병후(柳秉厚)・김무삼(金武三) 등과 함께 비밀리에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비밀모임이었다. 이경채는 몇몇 친우들과의 독서회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