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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리역에서 ♣

장손은, 서울대생은 그렇게 월남으로 갔다. 

미래인증건강신문 관리자 기자 |

♣ 청량리역에서 ♣ 

                        유영준

 우리나라는 참으로 좋은 나라이다.

그 당시에는 군대만 가면 담배도 공짜로 주었다.

 

군대에 가서 처음으로 한 일은

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모두 모으면 대학교 복학비가 될까 아닐까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등록금이 없어 군대를 온 나였다.

꼭 복학은 하여야만 했다.

 

대학교를 나와야 취직을 하고,

취직을 해야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을 테니까.

장남 하나 공부 시켜 온 가족을 책임지게 하던 시절 이야기다.

누이들은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공장으로, 식모살이로 떠나던 시절 이야기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돈이 모자랐다.

그 당시에도 서울대학교는 등록금이 매우 쌌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인사계님을 찾아 갔다. ‘월남에 보내주세요’ 했다.

인사계님은 너무나 쉽게 안 된다고 하셨다. ‘이 사람아 가면 죽어‘

그리고 자네가 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 당시만 해도 대학교 2년 마치고

온 엘리뜨?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더구나 나의 차트 글씨는 인근 부대에서도 알아 줄 정도였다.

낙심이 이만천만이 아니었다.

사정사정해도 막무가내셨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인사계님 구두를 광을 내드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니 인사계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가라고. 그러나 죽지는 말라고.

인자한 인사계님의 눈동자는 걱정이 가득하셨다.

파월 장병 훈련을 시키던 OO리를 거쳐 △△△역에  도착했다.

파월 장병 마지막 가족과의 면회가 △△△역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는. 

 

 어머님과 큰 누이가 오셨다.

파월 장병들은 기차 안에 있게 하고

면회객들은 기차 밖에서 창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연신 ‘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하셨다. ‘그깟 대학교 안가면 그만이다’ 라고도 하셨다.

누이는 ‘내가 벌어 등록금 대 줄게’라고도 하셨다.

동생과 집안 밖에 모르던 그 누이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무슨 걱정이냐고 나는 한껏 호기를 부렸다. 사실 은근히 겁은 났었지만.

참으로 묘한 일이다. 처음에는 죽고 사는 문제가 별거인가라고도 생각하였고

다 죽어도 나는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었는데

출국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부산항이 다가와 질수록 그게 아니었다.

겁이 났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돈을 마련해야 복학을 할 수 있으니까.

기차가 움찔 움찔 거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화통 삶아 먹은 소리는 이렇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기차는 삐익 삐이익 소리를 뒤로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랬다. 

 

어머니가, 어머님이, 
우리 엄마가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 않으시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도 하지 않으셨다.

움직이는 기차를 따라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기차에 따라 붙는 사람들 신발에,

구둣발에 밟혀도 깔려도 아랑곳 하지 않는

엄마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장손은,

서울대생은 그렇게 월남으로 갔다. 

 

 어머니 그 곳에도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이 있나요?

전쟁터 가는 자식 붙들고 우는 부모님들  계신가요?

손수건 좀 보내 드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