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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정조의 핵심 측근으로 정조와 함께 조선 개혁의 꿈을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른 넷 젊은 나이에 정조에 의해 전라도 순창군수로 임명되면서, 당시 백성의 고단한 현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본격적으로 조선 농업 현실을 생산력과 제도의 양 측면에서 혁신시킬 방도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