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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징비의식(懲毖意識)’ ※ 懲 징계할 징. 毖 삼가할 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리더의 ‘징비의식(懲毖意識)’​ ※ 懲 징계할 징. 毖 삼가할 비

‘역사의 연구’를 집필해서 순식간에 세계의 지식인으로 평가받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연구해 보면 민족의 유형이 크게 세 가지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재난(災難)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민족,

두 번째는 재난을 당해야만 준비(準備)하는 민족,

세 번째는 재난을 당하지 않고도 미리 대비(對備)하는 민족들이라 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해당 될 것인가. 스스로 자문(諮問)해 보기 바란다.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 선조 때 영의정과 전쟁 수행의 총 책임자를 지낸 유성룡柳成龍(1542~ 1607)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戰亂史)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록(懲毖錄)은 저자인 유성룡이 자리에서 물러나 낙향(落鄕)해서 집필한 것으로, 제목인 '징비'는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人命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疆土)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戰禍)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 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온 山川이 피로 물들고, 계곡마다 하얀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 썩은 물과 피물이 계곡을 흐르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참혹한 전란이 다시는 조선에서 반복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

이렇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쟁의 최고 책임자가 집필하여 썼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은 조선에서 편찬되지 못하고 1695년(숙종 21) 침략국 日本에서 편찬되었다는 것 또한 슬픈 일 중의 하나다. 17세기에 대마도(對馬島)에서 먼저 읽히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가 조선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하나 그동안 조선이 외침(外侵)을 받은 횟수는 무려 931번이라고 한다. 평균으로 5.3년마다 한 번씩 외침을 받았다는 결론이다. 조선은 왜 이렇게 외침을 많이 받았을까? 참으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토인비가 말한 첫 번째 민족유형이기 때문이다. 재난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민족이다.

참혹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38년 후 조선은 또 다른 치욕의 참혹한 전란에 휩쌓이게 되었고 강산이 초토화되었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징비록에서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준비해서 또 그런 비극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 데도 준비하고 대비하지 못한 지도자와 리더들의 無能과 無氣力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는 아예 나라가 통째로 없어졌다.       

-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