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 사랑하는 딸, 아들에게 ♣ 그려려니 하고 거드렁거리며 살아가거라 내려 올 산을 왜 올라 가냐고 어린 너는 말했었지 옛 날에 그렇다 세상만사 모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란다 집으로, 어느 사람들은 유치장으로 가기도 한단다 좋은 학교 보내려고 닦달 했던 엄마 아빠를 용서해라 그때는 몰랐어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단다 그냥 거드렁거리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몰랐단다 엄마 아빠는 바보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 귀한 따님 데려다 ♣ 지금 나와 한 이불을 쓰는 아내는 원래 나의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의 귀한 딸이다. 내가 다니던 농대가 있던 수원에 선생님이 전근을 오셨다는 말을 듣고 고학생인 나는 혹시 밥이나 한번 얻어 먹으려고 찾아 갔었는데 ‘오빠! 이 영어 단어가 무슨 뜻이야?’ 하고 묻던 아이었다. 월남 갔다 귀국하여 선생님을 찾아 뵈러 갔었는데, 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이 ‘오빠 왔어!’ 하고 문을 활짝 열던 그 학생이 지금 나에게 온갖 잔소리를 해 대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마나님의 옛 모습이다. 그 당시 머리 좋은 여학생들만이 들어간다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날 이상하게 집에 빨리 오고 싶어 학교에서 선생님께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일찍 오니 내 군화가 있더란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무슨 운명인가 봐’ 하고 중얼댄다. 난 속으로 웃곤 한다. 운명은 무슨 운명.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살아 준 여사님 고맙소.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군대는 사라져도 학생은 남는다 ‘캠프 페이지’ 마지막 수업 당시 미군 학생들이 건넨 롤링 페이퍼. /이청자 제공 –‘캠프 페이지’ 마지막 수업 기억나세요? 마지막 날, 학생들이 롤링 페이퍼를 써서 이씨에게 건넸다. “Thank you, you’ve been the best teacher ever”(고마워요, 당신은 최고의 선생님이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라고 그는 말했다. –수업마다 ‘5분 교양’ 강의를 하셨다고요. “동기 부여가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책임감을 주는 거죠. 공부에는 정년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02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서머스쿨을 수료했다. “어학연수라는 걸 한번 다녀오고 싶었는데 당시에 미국에서 일하던 아들이 등록을 해줬다”며 “에세이 써서 상도 받았다”고 말했다. 에세이 주제는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였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하루도 영어를 거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말하곤 하죠. 그래도 이렇게 내 영어 실력이 형편없으니, 너네도 한국어 서툰 걸 안타까워 말라고요.”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미군 앞에 강사로 서다 이씨가 한국어 수업 수강생인 주한 미군 앤서니 콜린스(왼쪽) 대위와 함께 환히 웃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알음알음 배운 피아노로 집앞 예식장에서 결혼행진곡을 연주하며 생활비 벌던 시절, 동네에서 알게 된 미군 장병들은 고마운 친구였다. “아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함께 포켓볼도 치고요.” 1991년이었다. “집 근처 ‘캠프 롱’ 성당 수녀님이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해서 미사 끝나고 혹은 가끔은 제 집에서 가르쳐주곤 했죠. 어느 날 그분이 지금 UMGC에 한국어 강사 자리가 났으니 지원해보라고 알려주더군요.” 이듬해 1월, 대학 시간강사가 됐다. –첫 수업 기억 나나요? “강의실이 흔들릴 만큼 떨었어요. 누가 장교인지 사병인지 모르지만 미군 10명 앞에 섰는데, 땀으로 겨울 내의가 다 젖었죠. 실수도 했겠지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수업에서 꼭 하는 말이 있나요? “첫날 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줘요. 나는 고아였고, 너희 선배들에게 빚을 졌고, 지금 이 수업은 일종의 페이백이라고. 뒤처진다고 느끼거나 결석을 했다면 언제든 보강 신청하라고. 나는 너네 컴퍼니(company·동료)라고.” 기분이 안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982년 이씨의 고입 검정고시 합격 이후 한 잡지에 실린 기사. 주제가 '만학 여성 분투기'였다. /이청자 제공 –그래서 검정고시를 준비한 건가요? “이러다간 계속 ‘국졸’ 엄마가 될 것 같았죠. 영어는 기초가 있으니 괜찮았어요. 덕분에 중학교 과정 시험은 한 번에 붙었습니다.” 1982년, 이씨의 고입 검정고시 합격은 꽤 화제가 됐다. 한 잡지에 ‘만학 여성 분투기’라는 문패로 대문짝만 한 글이 실리기도 했다. ‘고입 검정 시험 합격에 이어 내년의 대입 검정과 대학 입학을 꿈꾸고 있는 그녀는 토·일요일에는 예식장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아르바이트해 가며 학비와 교통비를 마련하고 있는 억척 주부이기도 하다….’ 이씨는 “따고 나니 그것도 초라해 안 되겠더라”며 “고졸 검정고시에도 도전했다”고 말했다. “물론 여러 번 미끄러졌지만요.” –몇 번요? “세 번요.” –어떻게 하셨나요? “열심히 학원을 다녔습니다. 1986년에는 집 근처 상지대학병설전문대학 관광영어통역과에 입학했다. 주경야독이었다. 1988년 야간으로 상명여대 영문과를 갔다. “면접 보려고 줄 서 있는데 누가 부르더라고요. 아줌마, 아줌마는 거기 서는 거 아니라고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나는 황홀한 고아였다”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부잣집이었다. 8·15 광복 이후 남한으로 내려와 충북 제천에 터를 잡았다. 이윽고 전쟁이 났다. 인민군에게 부친을 잃었다. “총살됐다고 들었다. 북한 살 때 지주(地主)였다는 이유로.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땅 있는 게 무슨 죄라고….” 그해 피란길, 난리 통에 모친과 헤어졌다. “남동생 손을 붙잡고 어찌어찌 춘천까지 갔다. 차를 탔는지, 그냥 걸었는지, 왜 하필 거기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거지꼴로 미군 기지 ‘캠프 페이지’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미군 병사였다. ‘쟌’이라고 했다. –무섭지 않았나요? “아뇨, 오히려 구세주 같았죠. 제 기억으로는 그 사람이 부대에 들어가서는 먹을 걸 가져왔을 거예요. 배고픈데 초콜릿 주니까 얼마나 좋던지요. 아마 나쁜 사람이었어도 따라갔을 거예요.” ◇학교 못 간 게 평생의 恨 그러나 정규 교육은 이어지지 못했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고아원 애들을 학교에 보냈어요. 저는 5학년 2학기에 입학해서 1년 뒤 졸업했는데 그게 제 마지막 학교 생활이었죠.” 이씨는 “교복 못 입어본 게 천추의 한”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우리는 조선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공화국 대한민국① 봉건 조선에 없던 대한민국 풍경들 박종인 선임기자 식민시대인 1926년 경복궁 앞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후 건국을 선포한 중앙청으로 사용됐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중앙청은 훗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철거됐다. 그 사이 이 땅에는 봉건 왕조와 식민시대가 지나고 공화국시대가 도래했다. 경복궁에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시간을 즐긴다. 부국와 강병으로 부활한 근대 공화국, 대한민국시대다./박종인기자 식민시대인 1926년 경복궁 앞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청사는 해방 후 건국을 선포한 중앙청으로 사용됐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중앙청은 훗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철거됐다. 그 사이 이 땅에는 봉건 왕조와 식민시대가 지나고 공화국시대가 도래했다. 경복궁에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시간을 즐긴다. 부국와 강병으로 부활한 근대 공화국, 대한민국시대다./박종인기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 행복을 위해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을 정책적으로 실천하는 근대 공화국입니다. 백성을 통치 대
미래인증건강신문 이헌수 기자 | 누 님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집 식모로 팔려가 몇푼 되지도 않은 돈을 받고 살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자 봉제공장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죽어라고 일만 하던 누님이 계셨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하나 사 쓰는 것도 아까워 안 사고 돈을 버는대로 고향집에 보내서 동생들 뒷바라지 했다. 그 많은 먼지를 하얗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몸은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해서 동생 셋을 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키웠다. 이 누나는 시집가는 것도 아까워 사랑하는 남자를 눈물로 보내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감내하며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늙어 갔다. 그러다 몸이 이상해서 약국에서 약으로 버티다 결국은 쓰러져 동료들이 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위암말기 라는 판정을 듣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을 해서 위를 잘라내면 살수 있다고 했다. 누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동생에게 전화를 합니다. "동생아 내가 수술을 해야하는데 3,000만원 정도 든 단다" 동생이 골프를 치다말고 말합니다. "누나, 내가 3만불이 어딨어" 누나는 "알았다, 미안하다" 힘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미군 기지 앞 아홉 살 전쟁고아, 주한미군의 30년 스승 되다 주한 미군에게 한국어 강의 메릴랜드大 이청자 선생 31년째 미군기지 출근, 제자 1000여명 배출해 정상혁 기자 이청자(82)씨는 30년 넘게 주한미군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 없이 거리에 나앉은 아홉 살 꼬마에게 내밀어 준 손길”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 장병에게 구조돼 영어를 익힌 이씨는 “페이백(pay back)하는 심정으로” 1992년부터 ‘캠프 롱’ ‘캠프 페이지’ ‘캠프 이글’ 등 전국의 미군 기지를 돌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글로벌 캠퍼스(UMGC) 소속 객원 부교수로 지금은 경기도 평택과 오산의 미군 기지로 출근해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3시간씩 강의한다. 강원도 원주 집을 출발해 왕복 250㎞, 흰색 소형차를 몰고 4시간 거리를 달린다. 이씨는 지난해 대학에서 30년 근속상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학생들이 선정하는 최고 영예의 ‘Stanley J. Drazek Teaching Excellence Award’를 수상했다. 이 소식이 미국 일간 ‘볼티모어 선’에 소개되며 이씨의 인생사(史)도 함께 세상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 군대는 교육기관이다 ♣ 나는 지금도 강의를 하거나 기회만 있으면 군대는 아주 훌륭한 교육기관임을 강조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이만큼 빠르게 잘 살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교육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군대도 교육기관이다. 군대에 가면 처음에 오(伍)와 열(列)을 맞춰 행군하는 것부터 가르친다. 군인의 길을 암송시킨다. 과거에는 3년간의 복무 중에 젊은이들이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 교육이 이루어졌다. 군대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평생을 잘 사는 분들 많이 있다. 아주 훌륭하고 중요한 삶의 지혜를 모든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체득하고 제대하였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각 특기별로 기술을 하나 이상씩 배우고 익혀 나와 그 기술이나 경험으로 평생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군대 가는 것을 싫어 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