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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의 이해

1964년작 ‘자각상’. 김종영이 49세에 제작한 자각상으로, 눈을 감은 채 내면에 깊이 몰입한 자신의 모습을 나무에 담았다. /김종영미술관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추상의 이해
1964년작 ‘자각상’. 김종영이 49세에 제작한 자각상으로, 눈을 감은 채 내면에 깊이 몰입한 자신의 모습을 나무에 담았다. /김종영미술관

이러한 환경에서 김종영이 보고 느꼈을 문제의식을 상상해 보라.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우리 전통 사상의 높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체득한 인물이다. 그 가치는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무한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가깝게 말하면 사랑이나 의리와 같은 무형의 가치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우주와 자연의 질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같은 것이다. 흔히 도교사상에서는 ‘도(道)’라고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높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조선은 서양의 과학적, 이성적 사고가 부족해 나라가 망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러니 김종영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는 동양의 사상에 뿌리를 두되, 서양의 과학적 사고를 종합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언어를 찾을 길은 없을까? 1955년 마흔이 된 김종영은 이런 메모를 남겼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과 어느 시대이고 생명을 잃지 않는 영원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후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는 ‘추상’을 연구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그 실마리를 따라가 보자. ‘작품 77-6′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의 얼굴이나 몸을 단순화시킨 것 같기도 하고, 흔한 꽃잎 같이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이것은 특정한 하나의 사물이라기보다, 인간이나 자연이 생장하는 원리 자체를 형상화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나의 중심원에서 생겨난 여러 작은 원들의 힘과 에너지 자체가 주제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이 작은 원들은 비슷하지만 각기 조금씩 다르게 자란다. 꽃잎의 모양이 모두 똑같지 않고,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다 같을 수 없듯이. 그러고 보면 자연의 모든 생장은 어떤 저항력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 하나를 두고, 이와 같은 상상을 끝도 없이 해볼 수 있다. 예술가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돌덩어리에 약간의 ‘가공(加工)’을 했을 뿐이지만, 관람자는 각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풍부한 해석을 덧붙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작가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한 작품에 무한한 내용을 ‘함축’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말하자면 ‘추상’의 원리이다.

김종영이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했던 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추상 개념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양에서 체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예만 해도 그렇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가 지닌 구조의 미학은 폴 세잔의 자연에 대한 구축적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김종영의 생각이었다. 그는 철저한 동양철학의 바탕 위에서 현대 추상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통용될 만한 좀 더 보편적인 궁극의 형상을 찾고 있었다.(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