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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有恥且格(유치차격)

“이끌기를 정치(법)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有恥且格(유치차격)
중앙일보
입력 2023.05.22 00:42

“이끌기를 정치(법)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끌기를 덕(德)으로 하고 다스리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바로잡아 선(善)에 이른다.” 『논어』 위정편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법제를 정비하고 형벌을 엄하게 하면 표면적으로는 질서가 잘 잡힌 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은 법망을 피하는 속칭 ‘법꾸라지’가 늘어나는 ‘면피사회’일 뿐 도덕사회는 결코 아니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들먹이며 학생은 휴대전화로 증거를 확보하고, 학부모는 확보한 증거로 교사를 고발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교사들도 열정으로 가르치다 괜히 빌미 잡힐 것을 염려하여 대강 지도한 흔적만 남기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교육 붕괴 현장 풍경이다.

법과 처벌은 근본 대책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알게 하여 스스로 선(善)을 향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과 인성 교육만이 해결책이다. 더딘 것 같지만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다. 당장에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학을 홀시하는 정책입안자부터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를 부끄러워해야 할 때다. ‘법대로’를 외치기보다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도록 이끄는 정치여야 한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