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 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고요? “네 살 때 가족이 여름휴가를 가던 길이었어요.

  • 등록 2025.01.08 15: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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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하나? 모든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장애인 배려한다고) 저만 특별 대우를 받는 게 싫었습니다. 수학여행까지 다 따라갔는데, 다른 애들과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싶었거든요(웃음). 부모님이 저를 버스에 태워주고 승용차로 뒤따라오셔서 하차를 도와주고, 산에 올라갈 땐 아빠가 휠체어를 밀어줬어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걸 보면 공부도 잘했나 봐요.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다섯 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고요?

“네 살 때 가족이 여름휴가를 가던 길이었어요. 고속도로 반대편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며 사고가 났습니다. 온 가족이 다쳤는데 제가 제일 심했어요. 신경을 다쳐 전신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명치 아래로 하반신만 마비돼 두 손은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휠체어를 타서 불편하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늘 휠체어를 타는 게 당연했지요.”

 

-부모님이 고생하셨겠네요.

“제가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하나? 모든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장애인 배려한다고) 저만 특별 대우를 받는 게 싫었습니다. 수학여행까지 다 따라갔는데, 다른 애들과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싶었거든요(웃음). 부모님이 저를 버스에 태워주고 승용차로 뒤따라오셔서 하차를 도와주고, 산에 올라갈 땐 아빠가 휠체어를 밀어줬어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걸 보면 공부도 잘했나 봐요.

 

“잘하려고 노력했죠. (너무 오래 앉아 공부하느라) 욕창이 생겨서 수술도 받았어요. 승부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게 싫었어요. 도움을 주고 싶었죠. 시험 기간엔 친구들에게 내가 공부한 것과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게 또 대화 소재가 되잖아요. 그렇게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장애가 청소년기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군요.

“특별히 더 힘든 건 없었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은 친구들 덕분에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쳤어요. 왕따를 당하지도 않았고요. 장애가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고 할까요. ‘장애가 핑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너는 몸이 불편하니까 이 정도면 잘한 거야’ 같은 얘기는 듣기 싫었지요.”

 

-휠체어 타는 게 불편하다는 사실을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면서요?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돌아다니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중고교 때는 생활 동선이 집~학교~학원이고, 놀아봤자 멀지 않은 근처 번화가 정도였죠. 대학 때는 MT도 가고, 학교 앞 술집이나 카페에도 가잖아요. 학교는 관악산 비탈에 있었고, 강의실도 제 힘으로 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수강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해 보니, 돈도 시간도 많아졌는데 오히려 제약이 더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박수빈씨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는 회사로 이직해 핵심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그가 다니던 SK텔레콤과 타다는 이동 약자를 위해 출퇴근을 도와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일종의 ‘안전지대’를 건설해 스스로를 구한 셈이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개인기가 아니라 인프라가 필요해
당사자가 아니면 보행장애인이 이동할 때 어떤 문제를 겪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계단뿌셔클럽을 함께 만든 이대호(35) 공동대표는 “박수빈씨는 ‘나만 이렇게 문제에서 벗어나 잘 살아도 괜찮은 걸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며 “결국 다른 이동 약자들을 돕기 위해 어렵게 구축한 자신의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단뿌셔클럽의 시작이었다.
 

유영준 기자 miraem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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